데이터 블로그 데이터 블로그
DATA BLOG
기록2026년 08월 28일·4분 분량·원자료 직접 집계

민생물가 대책회의…조선은 값을 잡으려 규제를 풀었다 (본편)

광고

한눈에 — 올해 8월 28일 아침,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가 하나 열렸습니다. 지난 7월 소비자물가는 한 해 전보다 2.8% 올랐습니다.

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값을 맡은 관청은 500년 내내 있었습니다조선왕조실록 정본 348,925기사
1791년, 여섯만 남기고 풀었다정조실록 · 정조 15년 1월 25일
한 달 뒤, 그리고 반대정조실록 · 정조 15년 2월 12일

오늘 아침 정부서울청사

G001_01.jpg

올해 8월 28일 아침,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가 하나 열렸습니다. 회의 이름이 깁니다. 비상경제본부 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티에프.

물가를 잡으려고 여러 부처 장관이 따로 모이는 자리입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왜 「특별관리」가 붙었나

G001_01.jpg

지난 7월 소비자물가는 한 해 전보다 2.8% 올랐습니다. 그런데 품목마다 다릅니다. 농산물은 2.2% 내렸는데 축산물은 4.4% 올랐고, 외식은 2.6% 올랐습니다.

8월에는 기록적인 폭염이 겹쳐 다시 3%대로 올라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먹을거리가 먼저 움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에 「특별」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국회 회의록에서 「물가」라는 말이 나온 회의는 천구백구십이 번입니다.

값을 맡은 관청은 500년 내내 있었습니다

G002_01.jpg

조선에도 시장을 맡은 관청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평시서입니다. 시장의 자와 되를 검사하고 값을 살피던 자리로, 실록에 95번 나옵니다.

물건값을 적은 기사는 214건입니다. 값이 오르면 조정이 나섰다는 뜻입니다.

광고

그런데 원인을 어디서 찾았나

G002_01_bd.jpg

값이 오르는 까닭을 「독점」에서 찾은 기록은 뜻밖에 적습니다. 도고라고 합니다. 물건을 몰아 쥐고 값을 매기는 일인데, 이것을 적은 기사는 20건뿐입니다.

그리고 그 20건 가운데 14건이 정조 임금 때 것입니다.

1791년, 여섯만 남기고 풀었다

G003_01.jpg
許市民六廛外, 通共和賣

— 시민에게 육의전 밖에서도 서로 통하여 사고팔도록 허락하다

*정조실록 · 정조 15년 1월 25일*

1791년 1월, 좌의정이 이렇게 아룁니다. 서울 백성의 병폐를 논하자면 독점이 으뜸이다.

놀고먹는 무리가 저희끼리 가게 이름을 만들어 길목에 숨었다가 싼값에 억지로 사들이고, 물주가 듣지 않으면 난전이라 부르며 묶어 관아에 넘긴다고 했습니다.

그날 결정이 내려집니다. 육의전만 남기고 나머지의 독점을 없앤다. 누구나 사고팔 수 있게 한다.

한 달 뒤, 그리고 반대

G004_01.jpg
自臣筵奏以後, 魚鮮等物價, 頓低於前

— 신이 아뢴 뒤로 생선 등 물건 값이 전보다 뚝 내렸습니다

*정조실록 · 정조 15년 2월 12일*

한 달이 채 안 된 2월, 같은 자리에서 그가 말합니다. 신이 아뢴 뒤로 생선 같은 물건 값이 크게 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같은 날 반대도 실려 있습니다. 시장을 맡은 관리가 말합니다. 여러 가게가 자리 잡은 지 수백 년이라 뿌리가 굳었는데, 난전을 다 금하면 가게들이 시들어 없애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임금은 양쪽을 다 듣고 이렇게 답합니다. 난전을 금해도 사사로운 독점은 반드시 생기니, 방편을 더 궁리해 넓은 길과 좁은 길을 함께 두라.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값을 맡은 관청은 500년 내내 있었습니다. 다만 값이 오르는 이유를 「누가 길목을 쥐고 있는가」에서 찾은 것은 조선 후기의 한 임금 때에 몰려 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이렇게 읽었습니다. 값을 누르는 일과 길을 넓히는 일은 다른 일이고, 조선은 그 둘을 같은 해에 함께 시도했습니다. 값이 내렸다는 보고와 가게가 무너진다는 걱정이 한 기사 안에 나란히 적혀 있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지금까지 숫자로 본 한국사였습니다.

기록 분야의 다른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