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지진 1,764건 — 왕은 땅이 흔들리면 정승을 바꿨다
숫자로 먼저
| 항목 | 값 |
|---|---|
| 1, | 764 |
| 헌종 1건 · 철종 | 0건 |
| 헌종 15년 기사 3,987건 — 세종의 8분의 | 1 |
여는 숫자

천칠백육십사. 조선왕조실록 전체에서 지진을 적은 기사의 수입니다.
세어 본 것은 실록 원문 파일 전부입니다. 태조부터 철종까지 삼십오만 기사, 육천백만 자. 이 가운데 땅이 흔들렸다고 적은 기사가 천칠백육십네 건이었습니다.
어떻게 세었나

한 가지 손봐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실록에는 같은 시대를 두 번 쓴 판본이 다섯 쌍 있습니다.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처럼요.
그대로 세면 같은 지진이 두 번 잡힙니다. 그래서 정본만 남기고 삼십사만 팔천구백스물다섯 기사를 셌습니다.
지진은 16세기에 몰려 있다

그런데 이 천칠백여 건이 오백 년에 고르게 퍼져 있지 않았습니다.
기사 만 건당 지진 기사를 세어 보면 십육세기는 백십일 점 구 건, 십구세기는 이 점 칠 건. 마흔한 배 차이입니다.
가장 많은 임금은 중종, 사백육십두 건. 그다음이 명종, 삼백서른여덟 건입니다. 명종 이십년, 서기 천오백육십오년 한 해에만 아흔다섯 건이 적혔습니다.
그해 기사를 열어 보면 함경도 삼수, 황해도 해주, 경상도 남해, 평안도 가산. 지방에서 올라온 보고가 한 줄씩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땅이 흔들렸다는 소식이 조정까지 올라와 사관의 붓에 닿았다는 뜻입니다.
1518년, 한양이 흔들린 밤

기록이 가장 생생한 날은 중종 십삼년, 서기 천오백십팔년 오월 보름밤입니다.
사헌부가 올린 글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제저녁 서울에 지진이 나 우레 같은 소리가 나고, 담과 집이 무너지고, 사람과 가축이 놀라 흩어진 것이 다섯 차례였다.
우의정 안당은 그날 밤 땅이 네 번 흔들렸으며 예로부터 없던 변고라고 했습니다. 중종 자신도 잠들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해 한 해 지진 기사는 마흔한 건이었습니다.
다음 날 벌어진 일

여기서부터가 이 숫자의 진짜 뜻입니다.
지진 다음 날, 영의정 정광필이 사직을 청했습니다. 재변이 큰 것은 자신이 정치를 고르게 하지 못한 탓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우의정 안당도 같은 날 물러나기를 청했습니다.
조선에서 지진은 재난이 아니라 경고였습니다. 땅은 음이고 신하이며, 그것이 흔들렸다는 것은 신하가 잘못했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중종은 그날 신하 스물여섯 명을 불러 놓고, 이 변고는 음이 성하고 양이 약해서라고 말합니다. 음은 소인이고 양은 군자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지진 보고가 곧바로 인사 문제로 넘어가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땅이 흔들리면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19세기, 지진이 사라지다

마지막 숫자가 이상합니다. 십구세기에 지진 기사는 일곱 건. 헌종 십오년 동안 한 건, 철종 십사년 동안 영 건입니다.
조선 후기에 지진이 멈춘 것일까요.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같은 시기 실록 자체가 얇아졌기 때문입니다. 헌종실록은 십오년 치가 사천 기사가 채 안 됩니다. 세종실록의 팔분의 일입니다.
숫자가 말하지 않는 것
그러니 이 그래프는 조선의 지진을 그린 것이 아니라, 조선이 지진을 적는 방식을 그린 것입니다.
땅이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어 두던 사람들이 줄었습니다. 숫자를 셀 때 남는 마지막 질문은 언제나 같습니다. 이 기록은 누가, 무엇을 위해 남겼는가.
집계에 쓴 자료와 방법은 설명란에 적어 두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어떻게 세었나
한 가지 손봐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실록에는 같은 시대를 두 번 쓴 판본이 다섯 쌍 있습니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 헌종실록 · 세종실록을 참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