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이름 — 실록을 고친 기록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지워진 이름 | 성종실록 · 1492년 1월 28일 |
| 사초라는 것 | 태조실록 · 1398년 5월 1일 |
| 처음 벌을 받은 사람 | 태조실록 · 1393년 1월 12일 |
| 태종이 한 말 | 태종실록 · 1402년 1월 3일 |
| 함부로 고친 자는 | 중종실록 · 1511년 1월 28일 |
| 하나하나 태워라 | 선조실록 · 1606년 3월 21일 |
지워진 이름

기록이 지워졌다는 이야기가 요즘 오갑니다. 그런데 이건 오늘 처음 나온 일이 아닙니다. 1492년, 조선의 공식 기록에서 사람 이름 둘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다른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지운 사람은 몰래 한 것이 아닙니다. 임금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받고, 그 과정까지 기록으로 남기면서 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사초라는 것

조선에는 사관이라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임금 옆에 앉아 오간 말을 그대로 적는 사람입니다. 회의에도 들어가고 행차에도 따라갔습니다. 그 사람이 적은 것을 사초라고 불렀습니다. 사초의 원칙은 한 줄이었습니다. 곧게 쓰고 숨기지 않는다. 임금이 잘한 것만이 아니라 잘못한 것도 그대로 적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초는 아무나 못 보게 했습니다.
처음 벌을 받은 사람

그런데 조선이 세워지고 반년 만에 일이 터집니다. 이행이라는 관리가 고려 때 사관을 겸했는데, 사초에 태조가 사람들을 죽였다고 적었습니다. 사헌부가 허위로 적었다며 벌을 청합니다. 그러자 태조가 무진년 이후의 사초를 가져오라 해서 직접 읽었습니다. 임금이 사초를 본 첫 기록입니다. 이행은 국문을 받았습니다.
사고를 열어라

그 뒤로도 임금들은 사초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태조는 1395년에 한 번 꺼냈다가 신하들이 안 된다고 해서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3년 뒤 다시 꺼냅니다. 이번에는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습니다. 사고를 열어라. 남김없이 가져와라. 그러면서 당나라 태종도 봤다는 옛일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임금이 보면 곧게 못 씁니다

임금이 도승지 이문화에게 물었습니다. 그때의 역사를 임금이 보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문화가 답했습니다. 역사는 곧게 쓰고 숨기지 않습니다. 임금이나 대신이 직접 보면, 꺼리는 바가 생겨서 곧게 쓰지 못합니다. 적는 사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기록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육백 년 전에 나온 말입니다.
태종이 한 말

더 놀라운 것은 태종의 말입니다. 자기가 신하 하나를 잘못 꾸짖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 말리고 나선 것이 사관들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관은 그저 적는 일을 맡을 뿐이다. 곧게 써서 주머니에 넣어 두니, 그것이 내 허물을 후세에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제 직분이 아닌데 나서서 간했으니, 이는 진실로 나를 아끼는 것이다. 임금이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 기록이 자기를 심판하리라는 것을.
그런데 성종은 허락했다
그러다 1492년에 일이 벌어집니다. 이계동이라는 신하가 자기가 한 말이 잘못 적혔다며 고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성종은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사초를 고치는 것은 과연 뒷날의 폐단이 된다.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신하들도 말립니다. 이 사람 기록을 고친다 한들 사관이 적어 둔 것을 어떻게 다 고치겠느냐고 했습니다.
틀린 곳만 고치는 것이니
그런데 성종이 바로 다음 문장에서 뒤집습니다. 지금은 틀린 곳만 고치는 것이다. 역사를 통째로 내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고친들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이름이 잘못 적힌 곳만 표를 붙여 고쳐 쓰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기록에 이렇게 남았습니다. 엄귀손과 허희, 두 사람 이름을 지우고 왕종신이라 써서 아뢰었다. 집을 불태웠다는 대목에 붙어 있던 이름이었습니다.
함부로 고친 자는
그러면 사초를 고치는 일이 가벼웠을까요. 아닙니다. 19년 뒤 조정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예종 때 사초를 함부로 고쳐 큰 죄를 받은 자가 있었다. 같은 나라에서, 임금이 허락하면 표를 붙여 고치는 일이고 혼자 하면 큰 죄였습니다. 무엇을 고쳤느냐가 아니라 누가 허락했느냐가 갈랐습니다.
하나하나 태워라
실록을 다 만들면 사초는 물에 씻어 글자를 지웠습니다. 세초라고 합니다. 씻은 종이는 다시 썼습니다. 그런데 1606년 선조가 이런 말을 합니다. 듣자니 전에는 세초를 게을리해서 사초가 창고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그러지 마라. 여러 관원이 모여서 하나하나 태워라. 지우는 일에도 날짜와 장소와 입회인이 있었습니다. 지운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지는 않았습니다.
남은 문장
지워진 이름 둘은 지금도 실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상한 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이름을 지웠다는 그 일이 기록으로 적혔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지웠는지, 누가 허락했는지, 그때 임금이 무슨 말을 했는지가 다 남았습니다. 지운 사람은 그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옆에서 그 장면을 적고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록은 지운 자리까지 기록합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지워진 이름,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492년, 조선의 공식 기록에서 사람 이름 둘이 지워지고 그 자리에 다른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사고를 열어라,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태조는 1395년에 한 번 꺼냈다가 신하들이 안 된다고 해서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3년 뒤 다시 꺼냅니다.
그런데 성종은 허락했다,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그러다 1492년에 일이 벌어집니다.
출처
태조실록 · 태종실록 · 성종실록을 참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