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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2026년 08월 28일·7분 분량·원자료 직접 집계

「조선군을 누가 훈련시켰나 — 청군이 머문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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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교습해 달라 청하다고종실록 · 1882년 9월 23일
백 명이 먼저 들어왔다고종실록 · 1882년 7월 13일
종이에 적힌 자리고종실록 · 1882년 10월 17일
연조를 보다고종실록 · 1882년 11월 7일
상까지 정하다고종실록 · 1882년 11월 16일
절반이 돌아가고, 다시 들어오다고종실록 · 1884년 10월 19일
나간다니 붙들고 싶었다고종실록 · 1885년 5월 25일
다시 청하다고종실록 · 1894년 5월 1일

교습해 달라 청하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우리 군대를 남이 훈련시켜 준다면, 그 군대는 누구 편일까요. 140년 전 조선이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1882년 9월 23일, 실록에 한 줄이 적힙니다. 백성 가운데 장정을 뽑아 모으고, 청 군문에 관원을 보내어 교습해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군문은 청나라 군대의 사령부, 교습은 가르친다는 말입니다.

새 군대를 만들면서 가르칠 사람을 밖에서 데려온 겁니다. 그것도 그해 여름부터 도성 안에 들어와 있던 남의 나라 군대한테서요.


오백 명 한 영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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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사에 누가 무엇을 맡았는지까지 적혀 있습니다.

청은 진영 일을 보던 원세개를 보냈습니다. 오백 명으로 한 부대를 만들어 신건친군, 새로 세운 임금의 군대라 이름 붙이고 청나라 장교와 함께 훈련시켰습니다. 곧이어 오백 명을 더 뽑아 한 부대를 더 만듭니다.

천 명입니다. 조선의 새 군대는 처음부터 남의 손에서 걸음마를 뗐습니다.

훈련을 맡은 그 관원은 이때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백 명이 먼저 들어왔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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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앞으로 돌아가 봅니다.

그해 여름 도성에서 구식 군인들이 밀린 봉급 문제로 들고일어났습니다. 임오군란입니다. 조선 정부는 청나라에 군대를 보내 달라고 청합니다.

7월 13일, 손님을 맞는 관리가 아룁니다. 청국 제독이 관원 일곱 사람과 수원 여덟 사람, 병대 백 명을 거느리고 오늘 사시쯤 관소에 들어왔다.

사시는 오전 아홉 시에서 열한 시 사이입니다. 이게 도성에 들어온 첫 행렬이었습니다.


이미 스무 영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같은 날 청나라 장수들이 조선 사람들에게 붙일 방을 내겁니다. 거기 병력 규모가 적혀 있습니다.

이 밖에 혹 앞서의 난당이 다시 다른 꾀를 낸다면, 지금 대병이 물과 뭍으로 함께 나아가 이미 스무 영이 있다.

영은 부대를 세는 단위입니다. 물길로도 뭍길로도 스무 부대가 이미 와 있다, 그러니 딴생각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같은 날 대원군이 그들의 배에 실려 청나라 천진으로 끌려갑니다.


종이에 적힌 자리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10월 17일, 조선과 청이 무역 규정을 맺습니다. 이름은 중조상민수륙무역장정. 장정은 규정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첫머리가 장사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은 오래 번봉의 자리에 있어 전례에 관한 일체가 다 정해진 제도가 있으니 다시 의논할 것이 없다.

번봉은 큰 나라에 딸린 나라를 말합니다. 끝에는 이런 문장도 붙었습니다. 이 규정은 중국이 속방을 우대하는 뜻이니, 조약을 맺은 다른 나라들이 똑같이 누릴 수 없다.

같은 해에 조선은 서양 나라와 대등한 조약을 처음 맺었습니다. 그 옆에 이 문장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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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조를 보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11월 7일, 임금이 창덕궁 춘당대에 나가 새로 만든 군대의 훈련 시범을 봅니다. 그러고는 청나라 사신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오늘 연조를 보니 이처럼 정숙하니 여러 장수가 마음을 쓰고 애쓴 것을 알 만하여 고마움을 이길 수 없다.

연조는 훈련 시범, 정숙하다는 건 손발이 잘 맞는다는 뜻입니다.

답이 이랬습니다. 귀국의 병사는 다 바탕이 있어 가르치기가 매우 쉬웠으니 부디 사례하지 마소서. 그러고는 진 치는 법을 그린 책 한 권을 올렸습니다.


상까지 정하다

아흐레 뒤, 훈련을 맡은 그 관원이 공문을 보냅니다. 훈련이 빨리 자리 잡은 건 자기 덕이 아니라면서, 공을 세운 사람들 명단을 올리고 상을 주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귀국이 사람을 쓰는 정령을 또한 어찌 감히 함부로 헤아리겠습니까.

사람 쓰는 건 귀국 일이니 제가 나설 자리는 아니라는 겁니다.

임금의 답은 짧았습니다. 이조와 병조에 분부하여 명단대로 시행하라.

조선 군인에게 줄 벼슬 명단이 조선 밖에서 만들어져 들어온 겁니다.


절반이 돌아가고, 다시 들어오다

1884년 4월, 경기감사가 아룁니다. 청 제독이 거느린 세 부대가 어제 길을 떠나 돌아갔다. 기사에 달린 주석은 이렇습니다. 여섯 영 가운데 셋은 돌아갔고 셋은 그대로 남았다. 남은 셋을 맡은 사람이 조선 군대를 훈련시키던 바로 그 관원이었습니다.

그해 10월, 남은 병력이 궁으로 들어갑니다. 갑신정변입니다.

이날 신시에 청병이 궁문으로 나뉘어 들어와 총포를 놓았고, 우리 좌우영 병사가 뒤따랐으며, 일본 병사가 힘껏 막았다.

훈련시킨 쪽과 훈련받은 쪽이 같은 편에 서서 궁으로 들어간 날이었습니다.


나간다니 붙들고 싶었다

1885년 5월 25일, 임금이 신하들과 마주 앉습니다. 그해 청과 일본이 조약을 맺어 양쪽 군대를 다 빼기로 한 참이었습니다.

임금의 말입니다. 일본 병사는 이미 철수했고 주둔하여 지키던 군사도 장차 철수한다 하니 우리나라에 어찌 허술한 일이 아니겠는가. 만약 머물러 달라고 청할 길이 있다면 나랏일에 매우 다행이겠다.

영의정도 거들었습니다. 네 해를 의지한 끝이라 허술함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철수해 돌아가지 않는다면 참으로 큰 다행이겠습니다.

불러들인 것도 조선이었고, 나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어 한 것도 조선이었습니다.


다시 청하다

1894년 5월, 남쪽에서 농민들이 크게 일어나자 조선 정부는 또 같은 곳에 손을 내밉니다.

기사에 달린 주석입니다. 정부가 은밀히 의논하여 청 조정에 구원을 청하였다. 그 의논 상대가 12년 전 조선군을 훈련시켰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청군 천오백 명이 아산에 내렸습니다.

그런데 청군이 왔다는 걸 명분으로 일본군도 들어옵니다. 그해 6월 21일 기록입니다. 이날 새벽 일본 병사 두 대대가 영추문으로 들어왔고, 시위병이 총을 놓아 막으려 하자 임금이 그치라 명하였다.

영추문은 경복궁 서쪽 문입니다. 훈련을 맡겼던 12년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흐를지, 기록은 아직 말하지 않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교습해 달라 청하다,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40년 전 조선이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백 명이 먼저 들어왔다,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7월 13일, 손님을 맞는 관리가 아룁니다.

종이에 적힌 자리,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0월 17일, 조선과 청이 무역 규정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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