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블로그 데이터 블로그
DATA BLOG
기록2026년 08월 28일·6분 분량·원자료 직접 집계

사건을 덮었다…정승 둘이 파직됐지만 열흘 만에 돌아왔다

광고

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다음 날 죽었다세종실록 · 1427년 6월 21일
열흘도 안 되어 돌아왔다세종실록 · 1427년 7월 15일

다음 날 죽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끝난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다는 말이 요즘 오갑니다. 육백 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1427년, 충청도 신창현. 고을 관청에서 일하던 표운평이라는 사람이 매를 맞았습니다. 볼기와 등을 열 대 남짓, 무릎과 다리를 쉰 대 넘게. 그리고 다음 날 죽었습니다.

사람 하나가 죽은 이 일로, 뒷날 좌의정과 우의정이 나란히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게 무슨 사람인가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시작은 사소했습니다. 서달이라는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고 길을 가다 신창현을 지났습니다. 고을 아전이, 그러니까 관청에서 실무를 보던 하급 관리가 예를 갖추지 않고 달아나자 화가 났습니다. 데리고 있던 종 셋을 시켜 잡아 오게 했습니다.

종들은 길에서 아전 하나를 붙잡아 묶어 앞세우고 갔습니다. 그 광경을 본 표운평이 한마디 했습니다. 이게 무슨 사람이냐, 고을에 원님도 없는 때에 관리를 이렇게 묶어 때리느냐.

그 말에 종들이 화를 냈습니다.

취한 척한다고 여겼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종들은 표운평을 넘어뜨려 발로 차고, 큰 몽둥이로 볼기와 등을 열 대 남짓 때린 뒤 서달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표운평은 정신이 아득해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서달은 그것을 술 취한 척 딴청을 부리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실록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노여움에 살피지 않았다.

서달은 데리고 다니던 사람을 시켜 그를 뒤로 결박하게 하고, 무릎과 다리를 쉰 대 넘게 더 때렸습니다. 표운평은 다음 날 죽었습니다.

처음엔 제대로 적혔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유족이 관찰사에게 호소했습니다. 관찰사는 조순과 이수강, 두 고을 수령을 보내 함께 조사하게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제대로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달이 시켜서 때린 것이라고 조서를 갖춰 관찰사에게 보고했습니다. 사실대로 적힌 것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서달이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사위인지가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외아들이니 불쌍히 여겨 달라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서달의 아버지는 형조판서였습니다. 오늘로 치면 법무를 맡은 우두머리입니다. 그리고 서달은 좌의정 황희의 사위였습니다.

마침 사건이 난 신창은 우의정 맹사성의 고향이었습니다. 맹사성은 죽은 사람의 형을 불러다 타일렀습니다. 고향 풍속을 아름답지 못하게 하지 말라.

아버지는 조사하던 수령들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외아들이니 불쌍히 여겨 달라. 서달의 매부였던 이웃 고을 수령도 직접 가거나 사람을 보내 애걸했습니다.

광고

길목에서 가로챘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문서가 사라집니다.

신창현감이 그 수령에게 알렸습니다. 차사관이 보고 문서를 가지고 갈 것이다.

그러자 그는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그 문서를 가로챘습니다. 실록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길에서 맞이해 그것을 가져갔다.

조사 결과가 담긴 공문서가, 올라가기 전에 중간에서 없어진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다음은 유족이었습니다.

친척뻘 되는 사람이 나서서 이익으로 꾀었고, 죽은 사람의 형은 뇌물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유족을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고향의 재상과 현직 수령이 시키는 일인데, 아전 된 자가 따르지 않으면 끝내 몸을 어디에 두겠느냐.

마침내 합의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종이를 죽은 사람의 아내 손에 쥐여 주어, 관청에 내게 했습니다.

다시 봐도 똑같았다

합의서가 들어오자 조사관들은 증인을 다시 모았습니다. 그리고 진술을 뒤집었습니다. 서달은 빠졌고, 죄는 종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관찰사가 미심쩍게 여겨 다른 두 수령에게 다시 조사하게 했습니다. 재조사입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도 청탁을 받았습니다. 실록은 한 줄로 적었습니다. 전에 만든 안건 그대로 보고하였다.

다시 본 결과가 앞의 것과 똑같았던 것입니다.

일곱 달을 끌었다

서류는 관찰사를 거쳐 형조로 올라갔습니다. 관찰사도 그 밑의 도사도 다시 살피지 않았습니다.

형조에서 이 사건을 맡은 실무 관리는 일곱 달을 끌었습니다. 그동안 다시 논의하지도, 다시 캐묻지도 않았습니다. 윗자리에 있던 참판도 살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서달은 풀려났고, 죄는 종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사건은 그대로 끝날 참이었습니다.

임금이 앞뒤가 안 맞는 데를 봤다

마지막에 걸린 것은 임금이었습니다.

형조가 형량을 정해 의정부에 올렸고, 의정부가 임금에게 아뢰었습니다. 세종은 조서를 읽다가 앞뒤가 맞지 않는 데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사건을 의금부로 내려 처음부터 다시 캐게 했습니다.

그러자 전부 드러났습니다. 좌의정 황희와 우의정 맹사성이 파직됐습니다. 형조판서는 임명장을 빼앗겼고, 형조참판과 대사헌, 형조좌랑은 귀양을 갔습니다. 곤장을 맞은 수령이 일곱입니다. 모두 열둘이 벌을 받았습니다.

열흘도 안 되어 돌아왔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파직됐던 두 정승은 열흘도 지나지 않아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대사헌이 두 번이나 글을 올려 처벌이 가볍다고 했지만, 임금은 대신을 물리는 일은 가벼이 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사람을 때려 죽인 서달은 원래 교수형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나 외아들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면했고, 귀양은 돈으로 대신했습니다.

덮은 사람들은 벌을 받았고, 죽인 사람은 살았습니다. 그리고 실록은 그 과정을 한 줄도 빼지 않고 적어 두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찾아갔고, 어느 길목에서 문서가 사라졌는지까지.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이게 무슨 사람인가

시작은 사소했습니다. 서달이라는 사람이 어머니를 모시고 길을 가다 신창현을 지났습니다.

다음 날 죽었다,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427년, 충청도 신창현.

기록 분야의 다른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