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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2026년 08월 28일·3분 분량·원자료 직접 집계

65세 이상 21% 넘었다…1432년 세종은 자리에서 내려서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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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 65세 이상 인구가 21%를 넘었습니다. 1432년 8월, 세종이 신하들에게 묻습니다.

숫자로 먼저

항목값
65세 이상 21% 돌파 · 2026년8월
중궁이 선정전에서 양로연을 행하니 부녀가 무릇154인이었다
기로소 기사 — 전기 22건 → 후기60건
양로연 170 → 22 · 기로소 22 →60

다섯 명 중 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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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 이상 인구가 21%를 넘었습니다. 다섯 명 중 한 명입니다.

조선에도 나라가 노인을 부르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양로연입니다.

임금이 자리에서 내려서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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群老之數近百, 若自入庭時立待, 則恐勞聖體

— 노인이 백 명에 가까우니, 뜰에 들어올 때부터 서서 기다리시면 옥체가 상할까 걱정입니다

*세종실록 · 세종 14년 8월 1일*

1432년 8월, 세종이 신하들에게 묻습니다. 이번 양로연에 노인들이 드나들 때 내가 자리에서 내려서서 기다리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맹사성과 허조는 어좌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안숭선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노인의 수가 100명에 가까우니, 뜰에 들어올 때부터 서서 기다리시면 옥체가 상할까 걱정입니다.

서민 남녀도 다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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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謂之養老宴, 則庶人男女, 當盡得與

— 또 양로연이라 이름 붙였으면, 서민 남녀도 마땅히 다 참여해야 한다

*세종실록 · 세종 14년 8월 14일*

같은 달 14일, 세종이 정척에게 말합니다.

양로연에 사대부의 늙은이는 참여하는데 명부의 늙은이는 참여하지 못하니 실로 온당치 않다. 또 양로연이라 이름 붙였으면 서민 남녀도 마땅히 다 참여해야 한다.

황희가 답합니다. 나이 든 부녀는 거동이 어려우니 그 집에 술과 고기를 내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부녀 백쉰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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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宮御宣政殿, 行養老宴, 婦女凡一百五十四人

— 중궁이 선정전에서 양로연을 행하니 부녀가 무릇 154인이었다

*성종실록 · 성종 2년 9월 14일*

1471년 9월, 중궁이 선정전에서 양로연을 엽니다. 그날 온 부녀가 154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줄이 더 붙어 있습니다. 사정이 있어 오지 못한 이에게는 모두 그 집으로 술과 음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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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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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서 양로연을 적은 기사는 192건입니다.

그런데 그중 태조부터 선조까지가 170건입니다. 광해군 이후 250년 동안은 22건뿐입니다.

임금이 노인들 앞에서 일어서려 했던 자리가 뒤로 갈수록 사라집니다.

남은 것은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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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늘어난 것이 있습니다. 기로소입니다.

기로소는 정2품 이상으로 일흔이 넘은 문신만 드는 곳이었습니다. 실록에 적힌 기사는 전기에 22건, 후기에 60건입니다.

백성까지 부르던 잔치는 사라지고, 고위 관료만 드는 기구는 늘었습니다.

삼백십일 년 뒤

臨御以後, 欲修擧舊典 … 而所未及行者養老宴也

— 즉위한 뒤로 옛 법을 다시 세우려 했는데, 아직 못 한 것이 양로연이다

*영조실록 · 영조 19년 3월 27일*

1743년 3월, 영조가 말합니다.

즉위한 뒤로 옛 법을 다시 세우려 했다. 시학과 친경의 예는 다 선왕들이 행하던 것인데, 아직 못 한 것이 양로연이다.

세종이 「서민 남녀도 다 참여해야 한다」고 한 지 311년 뒤였습니다.

기록이 남긴 것

지금 국회 회의록에는 「고령화」라는 말이 나온 회의가 1,587번 있습니다.

조선의 기록이 남긴 것은 이것입니다. 노인을 위한 제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부르는 범위가 좁아졌습니다. 백성을 부르던 잔치가 줄고 관료를 예우하는 기구가 남았습니다.

누구를 부르는가

제도를 몇 개 두느냐보다, 그 제도가 누구를 부르느냐가 남는 기록이었습니다.

숫자로 본 한국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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