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 자리가 무명 500필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물때 한 번에 오백 필 | 세종실록 · 1440년 3월 23일 |
| 어살이라는 것 | 정종실록 · 1398년 9월 12일 |
| 나라가 처음 한 일 | 태조실록 · 1397년 10월 8일 |
| 그 자리를 만들다가 | 세종실록 · 1434년 1월 26일 |
| 나눠 준 임금도 있었다 | 세종실록 · 1427년 6월 17일 |
물때 한 번에 오백 필

꽃게 철이 돌아왔습니다. 금어기가 풀리자 값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600년 전 조선에도 바다에서 돈이 나오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좋은 자리 하나에서 한 물때에 건진 것이 무명 500필에 팔렸다고 기록은 적었습니다. 그때 무명 500필이면 웬만한 집 여러 채 값입니다. 오늘은 그 자리를 누가 가졌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어살이라는 것

어살은 갯벌에 나무를 박고 발을 쳐서 물고기를 가두는 시설입니다. 물이 들어올 때 따라 들어온 고기가 물이 빠지면 갇혀서 못 나갑니다. 배도 그물도 필요 없습니다. 자리만 좋으면 물때마다 저절로 찹니다. 그래서 어살은 도구가 아니라 자리였습니다. 자리를 가진 사람이 고기를 가졌습니다.
나라가 처음 한 일

조선이 세워지고 5년째 되던 해, 나라가 감찰들을 각 도로 보냅니다. 시킨 일은 이렇습니다. 바닷가 고을의 소금 굽는 자리와 어살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얼마나 나오는지 헤아려서, 세금을 정하고 장부를 만들어라. 넉 달 뒤에는 그 장부로 실제 세금을 걷어 창고에 들입니다. 나라는 바다에서 돈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즉위 교서에 들어간 말

이듬해 정종이 왕위에 오르며 교서를 반포합니다. 새 임금이 처음 내놓는 국정 방향입니다. 그 안에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어량과 천택은 사재감이 맡을 것이니 다른 관청에 나눠 붙이지 마라. 산과 들의 자리는 사사로이 점유하지 못하게 하고 세를 가볍게 정해 백성을 편하게 하라. 즉위 교서에 들어갈 만큼 큰 문제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십이 년 뒤

1440년, 좌참찬 하연이 임금에게 글을 올립니다. 백성을 구제할 방책을 조목조목 적은 상소인데, 그 가운데 어살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등 어살은 한 물때에 목면 500여 필입니다. 그러자 부유한 상인과 큰 장사꾼이 몰려듭니다. 기와 굽는 나무를 관청에 바쳐 자리를 얻기도 하고, 평민이라고 이름을 속이기도 합니다. 심하면 자리를 두고 다투다 송사까지 갑니다.
나라도 백성도 아니었다

하연이 적은 문장은 짧습니다. 나라는 쓸 것이 부족하고, 백성은 이익을 보지 못한다. 바다에서 그만한 돈이 나오는데 나라 창고도 차지 않고 어민 살림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중간에서 가져간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땅에 보배가 있고 하늘이 재물을 냈는데, 어찌 무뢰한이 이익을 챙기라고 낸 것이겠는가.
그 자리를 만들다가
그런데 그 자리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사람이 갯벌에 들어가 나무를 박아야 만들어집니다. 1434년, 경상도 삼가 고을에서 수령 이보지가 어살 공사를 벌였습니다. 그날 비가 와서 물이 갑자기 불었습니다. 동원된 군인 38명이 그 자리에서 빠져 죽었습니다.
곤장 여든 대
감사가 조사해 올린 처분은 이렇습니다. 응당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으니 사리가 무겁다, 곤장 80대. 그런데 거기서 한 등급을 깎고, 그마저 돈을 받고 대신하게 한 뒤, 원래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사람 38명이 죽었는데 수령은 벌금을 내고 고을로 돌아갔습니다.
조정에서 갈렸다
이 처분을 두고 조정에서 말이 갈렸습니다. 인사를 맡은 이조가 먼저 말합니다. 몸소 나가서 사람을 부리지도 않았고, 죽은 자가 30여 명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파면해야 합니다. 그러자 안숭선이 파면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황희와 맹사성도 파면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권진 한 사람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익사자가 많으니 도로 임명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기록에 남은 반대는 그 한 줄입니다.
나눠 준 임금도 있었다
같은 임금이 7년 앞서 이런 교지를 내린 일도 있습니다. 요즘 흉년이 들어 백성이 늘 먹기 어렵다, 함길도 본궁에 딸린 연어 어살을 모두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 주라. 본궁은 왕실 재산입니다. 왕실 몫으로 잡혀 있던 자리를 떼어 백성에게 준 것입니다. 자리는 옮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에게 주느냐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남은 문장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나라는 세워지자마자 바다 자리를 조사해 장부를 만들었습니다. 새 임금은 즉위 교서에 사사로이 점유하지 말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42년 뒤, 그 자리는 상인들이 이름을 속여 가며 차지하고 있었고, 나라 창고도 어민 살림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만들다 38명이 죽었을 때, 책임진 사람은 벌금을 내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장부를 만드는 일과 장부대로 되는 일은 달랐습니다. 규칙을 적어 두는 것과 그 규칙이 지켜지는지 지켜보는 것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600년 전 기록이 그것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그 자리를 만들다가
1434년, 경상도 삼가 고을에서 수령 이보지가 어살 공사를 벌였습니다. 동원된 군인 38명이 그 자리에서 빠져 죽었습니다.
물때 한 번에 오백 필,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그런데 600년 전 조선에도 바다에서 돈이 나오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좋은 자리 하나에서 한 물때에 건진 것이 무명 500필에 팔렸다고 기록은 적었습니다.
나라가 처음 한 일,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조선이 세워지고 5년째 되던 해, 나라가 감찰들을 각 도로 보냅니다.
출처
태조실록 · 정종실록 · 세종실록을 참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