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보다 흔해진 약…조선은 아편을 8년 전에 알고도 법이 없었다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조선도 알고 있었다 | 헌종실록 · 1840년 3월 25일 |
| 8년 뒤, 의주 | 승정원일기 · 1848년 3월 26일 |
| 죽어도 남는 죄인데 | 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
| 견줄 조문이 없다 | 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 헌종실록 5월 9일 |
담배를 넘어섰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중·고등학생 삼천 명 넘게 조사했습니다.
그 가운데 오 점 이 퍼센트가 의료용 마약류를 병 때문이 아닌 이유로 먹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담배를 피워 본 아이는 사 점 이 퍼센트였습니다. 약이 담배보다 흔해진 것입니다.
무엇을, 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주의력 결핍 치료제였습니다. 스물넷에 가까운 비율로 첫째였고, 살 빼는 약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잠자는 약과 신경안정제도 있었습니다.
왜 먹었느냐고 물으니 답이 이랬습니다. 우울하고 불안해서가 가장 많았고, 집중해서 성적을 올리려고가 그다음, 살을 빼려고가 세 번째였습니다.
이미 다 나와 있는 숫자
주의력 치료제를 먹은 아이 넷 중 하나 가까이가 한 달에 스무 번 넘게 먹었다고 답했습니다. 관련 진료비는 4년 사이에 네 배가 됐습니다.
숫자는 이미 다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숫자가 나와 있다는 것과 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조선도 알고 있었다
挾帶鴉片, 戕害身命
— 아편을 끼고 들어와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
*헌종실록 · 1840년 3월 25일*
挾帶鴉片, 戕害身命
— 아편을 끼고 들어와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
*헌종실록 · 1840년 3월 25일*
1840년, 청나라에 다녀온 통역관이 조정에 문서를 올렸습니다.
「서양 사람이 중국에 들어와 아편을 끼고 들어와 사람의 목숨을 해칩니다. 어리석은 백성이 그 독을 입으면, 처음에는 남에게 이끌리다가 나중에는 재산을 다 날리고 몸을 상하면서도 뉘우칠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일로 죄를 받은 자가 수만 명을 밑돌지 않습니다.」
8년 뒤, 의주
鴉片烟取吸器具, 被捉於灣府
— 아편 피우는 기구가 의주에서 적발되다
*승정원일기 · 1848년 3월 26일*
鴉片烟取吸器具, 被捉於灣府
— 아편 피우는 기구가 의주에서 적발되다
*승정원일기 · 1848년 3월 26일*
1848년 봄, 사신 행렬이 돌아오는 길에 의주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행렬을 따라갔던 그림 그리는 관리 박희영의 짐에서 물건이 나왔습니다. 아편은 찾지 못했습니다. 피우는 기구만 나왔습니다.
관아 마당에서 그 자리로 부숴 버렸습니다.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將禍國家戕人命而後已
— 장차 나라에 화를 입히고 사람 목숨을 상하게 한 뒤에야 그칠 것이다
*승정원일기 · 1848년 3월 26일*
將禍國家戕人命而後已
— 장차 나라에 화를 입히고 사람 목숨을 상하게 한 뒤에야 그칠 것이다
*승정원일기 · 1848년 3월 26일*
비변사가 아뢰었습니다. 「이것은 서양에서 나온 것으로, 그 해로움은 장차 나라에 화를 입히고 사람의 목숨을 상하게 한 뒤에야 그칠 것입니다.」
무엇인지 몰라서 헤맨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드레 뒤 도화서는 그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죽어도 남는 죄인데
死有餘罪
— 죽어도 남는 죄다
*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死有餘罪
— 죽어도 남는 죄다
*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넉 달째, 처분을 정하는 문서가 올라왔습니다.
「나라 풍속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반드시 금해야 할 일을 저가 거리낌 없이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조짐을 막는 뜻으로 보면 죽어도 남는 죄입니다.」
그런데 문장은 거기서 끊기지 않고 이어집니다.
견줄 조문이 없다
國法律文中, 無可以旁照而確據者
— 나라 법 조문 가운데 견주어 근거 삼을 것이 없다
*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 헌종실록 5월 9일*
國法律文中, 無可以旁照而確據者
— 나라 법 조문 가운데 견주어 근거 삼을 것이 없다
*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 헌종실록 5월 9일*
「나라 법 조문 가운데 견주어 확실히 근거 삼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형이 마땅한지 아닌지를 다시 의논하게 했습니다.
열흘 뒤 결론이 나왔습니다. 법을 적용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형을 한 등급 낮춰 추자도의 종으로 보냈습니다.
아는 것과 대비하는 것
조선은 1840년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오는지, 저쪽에서 몇 사람이 무너졌는지 문서로 받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법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8년 뒤 첫 사람을 잡고도, 벌할 조문이 없어 넉 달을 의논했습니다.
아는 것과 대비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저는 읽습니다. 그때도 숫자는 이미 와 있었습니다. 「죄를 받은 자가 수만 명」이라는 한 줄로요.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무엇을, 왜요?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주의력 결핍 치료제였습니다. 스물넷에 가까운 비율로 첫째였고, 살 빼는 약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요?
비변사가 아뢰었습니다. 「이것은 서양에서 나온 것으로, 그 해로움은 장차 나라에 화를 입히고 사람의 목숨을 상하게 한 뒤에야 그칠 것입니다.」
이미 다 나와 있는 숫자,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관련 진료비는 4년 사이에 네 배가 됐습니다.
출처
헌종실록 · 승정원일기을 참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