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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2026년 08월 28일·5분 분량·원자료 직접 집계

담배보다 흔해진 약…조선은 아편을 8년 전에 알고도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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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조선도 알고 있었다헌종실록 · 1840년 3월 25일
8년 뒤, 의주승정원일기 · 1848년 3월 26일
죽어도 남는 죄인데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견줄 조문이 없다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 헌종실록 5월 9일

담배를 넘어섰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중·고등학생 삼천 명 넘게 조사했습니다.

그 가운데 오 점 이 퍼센트가 의료용 마약류를 병 때문이 아닌 이유로 먹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담배를 피워 본 아이는 사 점 이 퍼센트였습니다. 약이 담배보다 흔해진 것입니다.

무엇을, 왜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주의력 결핍 치료제였습니다. 스물넷에 가까운 비율로 첫째였고, 살 빼는 약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잠자는 약과 신경안정제도 있었습니다.

왜 먹었느냐고 물으니 답이 이랬습니다. 우울하고 불안해서가 가장 많았고, 집중해서 성적을 올리려고가 그다음, 살을 빼려고가 세 번째였습니다.

이미 다 나와 있는 숫자

주의력 치료제를 먹은 아이 넷 중 하나 가까이가 한 달에 스무 번 넘게 먹었다고 답했습니다. 관련 진료비는 4년 사이에 네 배가 됐습니다.

숫자는 이미 다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숫자가 나와 있다는 것과 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조선도 알고 있었다

挾帶鴉片, 戕害身命

— 아편을 끼고 들어와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

*헌종실록 · 1840년 3월 25일*

挾帶鴉片, 戕害身命

— 아편을 끼고 들어와 사람의 목숨을 해친다

*헌종실록 · 1840년 3월 25일*

1840년, 청나라에 다녀온 통역관이 조정에 문서를 올렸습니다.

「서양 사람이 중국에 들어와 아편을 끼고 들어와 사람의 목숨을 해칩니다. 어리석은 백성이 그 독을 입으면, 처음에는 남에게 이끌리다가 나중에는 재산을 다 날리고 몸을 상하면서도 뉘우칠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일로 죄를 받은 자가 수만 명을 밑돌지 않습니다.」

8년 뒤, 의주

鴉片烟取吸器具, 被捉於灣府

— 아편 피우는 기구가 의주에서 적발되다

*승정원일기 · 1848년 3월 26일*

鴉片烟取吸器具, 被捉於灣府

— 아편 피우는 기구가 의주에서 적발되다

*승정원일기 · 1848년 3월 26일*

1848년 봄, 사신 행렬이 돌아오는 길에 의주에서 짐을 풀었습니다.

행렬을 따라갔던 그림 그리는 관리 박희영의 짐에서 물건이 나왔습니다. 아편은 찾지 못했습니다. 피우는 기구만 나왔습니다.

관아 마당에서 그 자리로 부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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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將禍國家戕人命而後已

— 장차 나라에 화를 입히고 사람 목숨을 상하게 한 뒤에야 그칠 것이다

*승정원일기 · 1848년 3월 26일*

將禍國家戕人命而後已

— 장차 나라에 화를 입히고 사람 목숨을 상하게 한 뒤에야 그칠 것이다

*승정원일기 · 1848년 3월 26일*

비변사가 아뢰었습니다. 「이것은 서양에서 나온 것으로, 그 해로움은 장차 나라에 화를 입히고 사람의 목숨을 상하게 한 뒤에야 그칠 것입니다.

무엇인지 몰라서 헤맨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드레 뒤 도화서는 그를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죽어도 남는 죄인데

死有餘罪

— 죽어도 남는 죄다

*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死有餘罪

— 죽어도 남는 죄다

*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넉 달째, 처분을 정하는 문서가 올라왔습니다.

「나라 풍속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반드시 금해야 할 일을 저가 거리낌 없이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조짐을 막는 뜻으로 보면 죽어도 남는 죄입니다.

그런데 문장은 거기서 끊기지 않고 이어집니다.

견줄 조문이 없다

國法律文中, 無可以旁照而確據者

— 나라 법 조문 가운데 견주어 근거 삼을 것이 없다

*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 헌종실록 5월 9일*

國法律文中, 無可以旁照而確據者

— 나라 법 조문 가운데 견주어 근거 삼을 것이 없다

*승정원일기 · 1848년 4월 29일 · 헌종실록 5월 9일*

「나라 법 조문 가운데 견주어 확실히 근거 삼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형이 마땅한지 아닌지를 다시 의논하게 했습니다.

열흘 뒤 결론이 나왔습니다. 법을 적용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형을 한 등급 낮춰 추자도의 종으로 보냈습니다.

아는 것과 대비하는 것

조선은 1840년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오는지, 저쪽에서 몇 사람이 무너졌는지 문서로 받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법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8년 뒤 첫 사람을 잡고도, 벌할 조문이 없어 넉 달을 의논했습니다.

아는 것과 대비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저는 읽습니다. 그때도 숫자는 이미 와 있었습니다. 「죄를 받은 자가 수만 명」이라는 한 줄로요.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무엇을, 왜요?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주의력 결핍 치료제였습니다. 스물넷에 가까운 비율로 첫째였고, 살 빼는 약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요?

비변사가 아뢰었습니다. 「이것은 서양에서 나온 것으로, 그 해로움은 장차 나라에 화를 입히고 사람의 목숨을 상하게 한 뒤에야 그칠 것입니다.

이미 다 나와 있는 숫자,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관련 진료비는 4년 사이에 네 배가 됐습니다.

출처

헌종실록 · 승정원일기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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