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대응기금 신설…"3년 치 없으면 나라가 아니다"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미리 쌓아 둔다 | 태종실록 · 1401년 7월 23일 |
| 의창을 두다 | 태조실록 · 1392년 9월 24일 |
| 값을 고르게 | 세조실록 · 1458년 4월 15일 |
| 장부에만 있는 곡식 | 태종실록 · 1416년 3월 18일 |
| 다 냈다고 적어 놓고 | 세종실록 · 1424년 2월 5일 |
| 남은 곡식으로 | 성종실록 · 1480년 10월 26일 |
미리 쌓아 둔다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혀서 그 몫으로 기금을 만든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지금 쓰지 않고 앞날을 위해 미리 쌓아 두겠다는 뜻이지요.
미리 쌓아 두는 일은 아주 오래된 문제입니다. 조선은 나라를 세우면서부터 이 문제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곡식을 얼마나 쌓아 두어야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그 기준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삼 년 치

1401년, 신하들이 궁궐 짓는 일을 말리며 옛말을 끌어옵니다.
나라에 삼 년 치 비축이 없으면 그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삼 년입니다. 흉년이 한 번 들면 한 해가 무너지고, 두 해 이어지면 씨앗까지 먹습니다. 그래서 삼 년을 버틸 것이 창고에 있어야 나라 구실을 한다고 본 겁니다.
기준은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한 해도 못 버틴다

같은 글에서 신하들이 현실을 적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비축을 보면, 수만 군사의 한 해 양식조차 부족합니다.
삼 년은커녕 한 해도 못 버틴다는 말입니다. 나라를 세운 지 십 년이 채 안 된 때였습니다.
그러니 조정은 곡식을 쌓아 둘 방법을 따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의창을 두다

나라를 연 그해에 이미 의창을 두었습니다. 굶는 사람을 먹이기 위한 창고입니다.
운영 방식도 함께 정했습니다. 농사철이 오면 가난한 이에게 먼저 양식과 씨앗을 내주고, 반드시 되로 되어서 준다. 가을에 거둘 때는 빌려준 만큼만 받는다. 이자를 붙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되로 되지 않고 넉넉한 집에 함께 나눠 준 수령은 죄를 묻는다고도 적었습니다.
값을 고르게

의창 옆에 상평창을 두자는 논의도 이어집니다. 이름 그대로 값을 고르게 하는 창고입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봄여름에 곡식이 비쌀 때는 값을 올려 베를 사들이고, 가을겨울에 곡식이 쌀 때는 값을 내려 쌀로 바꾼다.
비쌀 때 팔고 쌀 때 사들여 값의 오르내림을 줄이는 겁니다. 세종 때 신하는 이 제도의 목적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굶주려도 백성이 상하지 않고, 풍년이 들어도 농민이 상하지 않게 한다.
장부에만 있는 곡식

그런데 1416년, 굶는 백성을 구제하러 가는 관원이 이렇게 아룁니다.
경기의 쌀은 수령들이 회계할 때마다 헛수만 적어 두어서, 실제로는 쌓인 것이 없습니다.
장부에는 있는데 창고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충청도와 강원도 쌀을 옮겨 쓰자고 청합니다. 임금은 강원도 것은 안 된다고 합니다. 동북면에 일이 생기면 무엇으로 대겠느냐는 이유였습니다.
다 냈다고 적어 놓고
팔 년 뒤, 강원도 감사 황희가 고을 이름을 하나하나 들어 보고합니다.
강릉과 울진, 양양과 평해와 고성. 어떤 고을은 사만여 석을 걷어야 하는데 이삼천 석만 걷었고, 어떤 고을은 삼만여 석 가운데 오륙백 석만 걷었습니다. 그러고는 다 받아들였다고 꾸며 장부에 적었습니다.
황희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구황할 때가 되니 창고에 쌓인 것이 없었다. 나라를 속인 것이 이보다 심할 수 없다.
임금은 그 수령들을 벌하지 말라고 합니다. 흉년이 심해 백성이 흩어졌으니, 못 걷은 것으로 수령에게 죄를 더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남은 곡식으로
시간이 더 흐릅니다. 1480년에 한 관원이 상소를 올립니다.
상평창에서 곡식과 베를 사고팔 때 더하고 빼는 폐단이 끝이 없습니다. 재물을 불리려는 자는 의창에 남은 곡식을 상평의 곡식이라 이름 붙이고, 그것으로 산 베를 모두 사사로이 씁니다.
그는 말을 이렇게 맺습니다. 말하기가 부끄럽습니다.
남는 곡식이 있는데
장부에만 곡식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그날, 임금이 한 말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나라에 남는 곡식이 있는데 백성이 여전히 굶는다면, 어찌 나라에 이롭다 하겠는가. 곡식 만만 섬을 쓰더라도 백성이 굶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을 꺼리겠는가.
쌓아 두는 일에는 두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실제로 쌓는 일, 그리고 필요할 때 여는 일입니다. 기록이 남긴 것은 그 둘이 자주 어긋났다는 사실입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