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 거짓은 어떻게 가리나…조선은 상과 벌을 한 문장에 적었다
한눈에 — 1401년 8월, 의정부가 상소를 올립니다. 역모를 알린 말이 사실이면 밭 200결과 노비 20구를 주고, 벼슬이 있으면 세 등급을 올리고, 없으면 곧바로 육품에 임명한다.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조선은 이걸 한 문장 안에 넣었다 | 태종실록 · 태종 1년 8월 1일 |
| 상과 벌을 같이 적었다 | 태종실록 · 태종 2년 1월 26일 |
| 다섯 달 뒤, 실제로 그렇게 됐다 | 태종실록 · 태종 2년 6월 7일 |
| 얼마나 자주 그랬나 | 조선왕조실록 정본 348,925기사 |
신고는 늘었는데, 거짓은 어떻게 가리나

내부 비리를 알리는 신고, 공익신고라고 합니다. 국회 회의록에서 이 말이 나온 회의만 구백열두 번입니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서 늘 따라 나오는 걱정이 있습니다. 거짓 신고는 어떻게 가리느냐.
신고를 막으면 진짜 비리가 묻히고, 열어 두면 억울한 사람이 생깁니다. 여는 쪽과 막는 쪽이 늘 부딪힙니다.
조선은 이걸 한 문장 안에 넣었다

其中挾私懷怨, 敢行誣告者反坐, 以杜讒佞
— 그중 사사로운 원한을 품고 감히 무고하는 자는 그 죄를 되돌려 씌워, 참소를 막으소서
*태종실록 · 태종 1년 8월 1일*
1401년 8월, 의정부가 상소를 올립니다. 억울한 백성이 관아에서 안 받아 주면 대궐 앞 북을 치게 하자고. 우리가 아는 신문고입니다.
그런데 그 상소 안에 이런 구절이 같이 들어 있습니다. 사사로운 원한을 품고 무고하는 자는 그 죄를 되돌려 씌우자고.
말할 길을 여는 문장과 거짓의 값을 정하는 문장이 한 상소에 나란히 있었습니다.
상과 벌을 같이 적었다

言之有實, 賞田二百結、奴婢二十口 … 其有誣告者, 抵罪反坐
— 말한 것이 사실이면 밭 200결과 노비 20구를 상으로 준다 … 무고한 자는 그 죄에 처하여 되돌려 씌운다
*태종실록 · 태종 2년 1월 26일*
이듬해 정월, 신문고를 세운다는 교서가 내려옵니다.
역모를 알린 말이 사실이면 밭 200결과 노비 20구를 주고, 벼슬이 있으면 세 등급을 올리고, 없으면 곧바로 육품에 임명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줄입니다. 무고한 자는 그 죄에 처하여 되돌려 씌운다.
상과 벌이 한 문서에, 몇 줄 사이에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다섯 달 뒤, 실제로 그렇게 됐다

龜與檢校典書李臣彦爭臧獲不得, 誣告臣彦謀叛, 反坐
— 김귀가 이신언과 노비를 다투다 얻지 못하자 이신언을 모반으로 무고했고, 그 죄를 되돌려 받았다
*태종실록 · 태종 2년 6월 7일*
같은 해 6월, 전 사직 김귀가 처형됩니다.
노비 송사에서 지자 상대를 모반으로 고발했습니다. 모반은 목숨이 걸린 죄입니다. 거짓이 드러나자 그 죄가 그대로 자기에게 돌아왔습니다.
법을 만든 지 다섯 달 만이었습니다.
얼마나 자주 그랬나

실록에서 무고를 적은 기사는 819건입니다.
그 죄를 되돌려 씌우는 반좌는 282건이고, 둘이 한 기사에 함께 적힌 것이 136건 있습니다.
무고를 적을 때마다 여섯에 하나꼴로 그 값이 함께 적혔습니다.
북은 자주 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신문고를 이름으로 적은 기사는 사십팔 건뿐입니다. 북을 쳤다는 기록을 다 세어도 268건입니다.
500년 동안 그만큼입니다. 길은 열려 있었지만 자주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문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아를 먼저 거쳐야 했고, 거치지 않고 바로 치면 그것도 죄였습니다.
촌철살인
여기서 하나는 분명합니다.
말할 길을 넓히는 일과 거짓의 값을 정하는 일은, 따로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은 그 둘을 같은 상소, 같은 교서에 넣었습니다.
한쪽만 손대면 다른 쪽이 무너집니다.
남는 말
문을 넓히려면, 문지기도 같이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북을 세우면서 문지기를 같이 세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