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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은 사람이 하나라도 나오면 수령을 다스려라 — 16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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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규정세종실록 · 1418년 9월 26일 · 호조 계
흉년이 온다현종실록 · 1670년 7월 23일 · 영의정 정태화
열한 사람현종실록 · 1670년 7월 19일
스물두 자현종실록 · 1670년 8월 23일
선비도 굶어 죽다현종실록 · 1670년 8월 28일
호랑이 가죽 값현종실록 · 1670년 10월 2일 · 경상감사 민시중
바다 건너현종실록 · 1671년 1월 30일 · 제주목사 노정
숫자가 된 사람들현종실록 · 1671년 2월 13일
전라도의 봄현종실록 · 1671년 3월 10일
명령이 닿지 않는 나라현종실록 · 1671년 5월 9일 · 좌의정 정치화

규정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요즘 물이 모자란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립니다. 조선에는 흉년에 관한 규정이 따로 있었습니다.

1418년, 나라 살림을 맡은 호조의 건의가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 농사를 망친 고을은 감사가 직접 돌며 굶는 사람을 먹이고, 한 사람이라도 굶어 죽으면 사헌부에 넘겨 다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헌부는 관리들을 감찰하던 곳입니다.

굶어 죽은 사람이 한 명만 나와도 그 고을 수령을 조사한다는 뜻입니다.


흉년이 온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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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이백오십여 년 뒤인 1670년 여름, 영의정 정태화가 아룁니다. 올해 크게 흉년이 들 테니 굶는 사람 먹일 책임자부터 빨리 뽑으시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관리들 봉급을 올려 준 조치도 그대로 둘 수 없다 했고, 임금은 겨울부터 도로 줄이라 명했습니다. 나라가 먼저 허리띠를 조인 것입니다.


열한 사람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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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화가 그 말을 하기 나흘 전, 첫 보고는 이미 올라와 있었습니다. 경상도 함양에서 굶주리던 사람 열한 명이 굶어 죽었고, 임금은 구호를 베풀게 했습니다.

규정대로라면 여기서 그 고을 수령을 조사해야 했습니다. 조사했다는 기록은 실록에 없습니다. 대신 다음 보고가 이어집니다.


스물두 자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한 달 뒤에는 도성 안입니다. 실록이 그 죽음에 쓴 글자는 스물두 자, 문자메시지 한 줄 길이입니다.

서울 서부에서 여인이 굶어 죽었다. 한성부가 아뢰니 구호를 베풀라 명하였다.

한성부는 서울을 맡아 다스리던 관청입니다. 이름도 나이도 없습니다. 굶어 죽었다는 사실과, 나라가 장례를 돌보라 했다는 것. 남은 것은 그뿐입니다.


선비도 굶어 죽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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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뒤, 이번에는 선비였습니다. 한성부가 아뢰자 임금이 답합니다. 일이 지극히 놀랍고 참혹하다. 따로 구호를 베풀고, 그 처자에게도 양식을 주어 살려내라.

굶어 죽는 일이 양반 집안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이듬해 봄, 영의정 허적은 벼슬을 지낸 사람이 겨울에 굶어 죽었고 그 손녀까지 굶어 죽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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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가죽 값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곳간이 비자 지방관들이 머리를 씁니다. 그해 가을, 경상감사 민시중이 청합니다. 임금께 바칠 호랑이와 표범 가죽 값을 그대로 받아 굶는 사람 먹이는 데 쓰게 해 달라. 임금은 허락했습니다.

임금에게 바칠 물건을 팔아 굶는 사람을 먹이겠다는 말입니다. 이 청이 그대로 통했다는 사실이 그해 창고 사정을 말해 줍니다.


바다 건너

해가 바뀌자 제주에서 보고가 올라옵니다. 섬사람들이 산에 올라 나무 열매를 주웠지만 열매가 다했고, 내려와 나물을 캤지만 풀뿌리마저 떨어져 소와 말을 잡아 배를 채운다고 했습니다. 사만여 명이 굶는데 창고는 이미 비었습니다.

조정은 곡식 칠천 석을 배에 실어 보냈습니다. 그런데 실록이 덧붙입니다. 지난겨울에 봉해 보낸 보고가 이제야 닿았고, 곡식 실은 배도 제때 가지 못해 굶어 죽은 섬사람이 더 늘었다고.


숫자가 된 사람들

이듬해 봄부터 보고는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숫자로 올라옵니다. 경상도에서 굶주린 사람 삼만 팔천구백예순일곱 명,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은 사람 삼백여 명.

죽은 사람에게 이름 대신 자릿수가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같은 달, 청나라에 다녀온 사신이 황제의 말을 전합니다. 그대 나라 백성이 가난해 살아갈 수 없어 모두 굶어 죽게 되었다는데, 돌아가 국왕에게 이 말을 전하라.


전라도의 봄

1671년 봄, 전라도 보고가 올라옵니다. 돌림병으로 죽은 사람 천칠백여 명, 굶주린 사람 십삼만 삼천여 명, 죽 나눠 주는 곳과 길바닥에서 죽은 사람 백사십여 명.

그리고 마지막 한 줄이 있습니다. 지난가을 이후 각 고을 감옥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은 사람이 백삼십 명.

굶주림이 감옥 안까지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명령이 닿지 않는 나라

그해 여름, 좌의정 정치화가 임금 앞에서 말합니다. 강화도와 남한산성에 쟁여 둔 비상 곡식은 남김없이 바닥났고, 관리들 봉급조차 평안도 한 곳에 기대고 있다. 영남의 역졸이 거의 다 굶어 죽어 조정의 명령이 장차 전해지지 못할 것이다.

역졸은 관청의 문서와 명령을 말로 나르던 사람들입니다. 굶주림이 사람을 죽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명령이 오가던 길까지 끊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굶어 죽으면 담당자를 다스리라던 규정은 이백오십 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 규정이 지켜졌다는 기록은 이 두 해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죽은 사람의 수를 세어 적어 둔 문장은 날짜마다 남았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규정,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418년, 나라 살림을 맡은 호조의 건의가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

흉년이 온다,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그로부터 이백오십여 년 뒤인 1670년 여름, 영의정 정태화가 아룁니다.

전라도의 봄,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671년 봄, 전라도 보고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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