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공사장에 임금이 더위약 4천 알을 보냈다 — 1794년 화성」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사천 알 | 정조실록 · 1794년 6월 28일 |
| 억만 년의 계책 | 정조실록 · 1794년 1월 15일 |
| 백성을 부리소서 | 정조실록 · 1794년 5월 22일 · 영중추부사 채제공 |
| 다시 청하다 | 정조실록 · 1794년 6월 28일 · 우의정 이병모 |
| 근년에 처음 보는 더위 | 정조실록 · 1794년 7월 6일 |
| 성보다 급한 것 | 정조실록 · 1794년 7월 11일 |
| 옥 안에 물동이 | 세종실록 · 1448년 7월 2일 |
| 남은 문장 | 태조실록 · 1394년 2월 29일 |
사천 알

頒新方滌暑丹四千錠于華城役所
— 새로 만든 처방의 척서단 4천 정을 화성 역소에 내려주었다
*정조실록 · 1794년 6월 28일*
頒新方滌暑丹四千錠于華城役所
— 새로 만든 처방의 척서단 4천 정을 화성 역소에 내려주었다
*정조실록 · 1794년 6월 28일*
요즘 더위 이야기가 자주 들립니다. 이백 년 전 임금도 같은 걱정을 했습니다.
1794년 여름, 수원에 성을 쌓던 공사장으로 약 사천 알이 내려갑니다. 이름은 척서단, 더위를 씻어낸다는 뜻의 약입니다. 궁에서 새로 지어 만들었습니다. 한 알씩 먹는다면 사천 명 몫입니다.
실록은 이 일을 한 줄로 적었습니다. 새로 만든 척서단 사천 알을 화성 공사장에 내려주었다.
밥인들 달겠으며

宵旰一念, 不能晷刻暫弛, 而食豈甘、寢豈便乎?
— 밤낮으로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데, 밥인들 달겠으며 잠인들 편하겠는가
*정조실록 · 1794년 6월 28일*
宵旰一念, 不能晷刻暫弛, 而食豈甘、寢豈便乎?
— 밤낮으로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데, 밥인들 달겠으며 잠인들 편하겠는가
*정조실록 · 1794년 6월 28일*
약만 내려간 게 아닙니다. 임금의 말이 함께 갔습니다.
이 더위에 성 쌓는 곳에서 숨을 헐떡이며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밤낮으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밥인들 달겠으며 잠인들 편하겠는가.
공사장의 더위를 자기 밥과 잠에 견준 것입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덧붙였습니다. 그렇게 걱정한들 더위 먹은 사람의 몸을 식히는 데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고.
정화수에 반 알

中暍、飮暑之類, 或調一錠、半錠於井華水喫之
— 더위를 먹었거나 더위에 상한 자는 한 정 혹은 반 정을 정화수에 타서 먹게 하라
*정조실록 · 1794년 6월 28일*
中暍、飮暑之類, 或調一錠、半錠於井華水喫之
— 더위를 먹었거나 더위에 상한 자는 한 정 혹은 반 정을 정화수에 타서 먹게 하라
*정조실록 · 1794년 6월 28일*
같은 글에 먹는 법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더위 먹은 사람에게 한 알이나 반 알을 정화수에 타서 먹이라고 했습니다. 정화수는 새벽에 처음 길은 우물물입니다.
누구에게 줄지도 못 박았습니다. 장인과 모군, 기술자와 날품팔이 일꾼입니다. 감독하던 관리가 아니라 돌을 뜨고 흙을 나르던 사람들입니다. 아픈 사람 돌보는 방법도 각별히 챙기라는 말이 뒤에 붙었습니다.
억만 년의 계책

築斯城也, 將以爲億萬年悠久之計, 人和爲貴
— 이 성을 쌓는 것은 억만 년 오래갈 계책으로 삼으려는 것이니 사람의 화합이 귀하다
*정조실록 · 1794년 1월 15일*
築斯城也, 將以爲億萬年悠久之計, 人和爲貴
— 이 성을 쌓는 것은 억만 년 오래갈 계책으로 삼으려는 것이니 사람의 화합이 귀하다
*정조실록 · 1794년 1월 15일*
성은 그해 초부터 쌓고 있었습니다. 임금이 팔달산에 올라 성터를 내려다보고 그 이름을 화성이라 정합니다.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성은 억만 년 갈 계책으로 쌓는 것이니 사람의 화합이 귀하다. 이미 지은 민가를 성 쌓는다고 헐어 낼 수는 없다.
성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을 공사 첫날에 해 둔 셈입니다.
백성을 부리소서

本府城役, 必欲不勞一民, 予意有所在矣
— 이 고을의 성 쌓는 일만은 한 사람도 수고롭게 하지 않으려는 뜻이 내게 있다
*정조실록 · 1794년 5월 22일 · 영중추부사 채제공*
本府城役, 必欲不勞一民, 予意有所在矣
— 이 고을의 성 쌓는 일만은 한 사람도 수고롭게 하지 않으려는 뜻이 내게 있다
*정조실록 · 1794년 5월 22일 · 영중추부사 채제공*
넉 달 뒤, 원로 대신 채제공이 아룁니다. 나라에 큰 공사가 있으면 백성을 부리지 않을 수 없다, 성인도 때를 가려 부리라 했지 부리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승려 부대까지 쓰자고 했습니다.
화성 공사는 공짜로 끌어다 쓰는 부역이 아니라 삯을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임금의 답이 이렇습니다. 경이 말하지 않아도 어찌 모르겠는가. 다만 이 고을의 성 쌓는 일만은 한 사람도 수고롭게 하지 않으려는 뜻이 내게 있다.
다시 청하다

聖王之政, 不過曰愛人而使民而已。 愛之能勿勞乎?
— 성왕의 정치란 사람을 사랑하고 백성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사랑한다면서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조실록 · 1794년 6월 28일 · 우의정 이병모*
聖王之政, 不過曰愛人而使民而已。 愛之能勿勞乎?
— 성왕의 정치란 사람을 사랑하고 백성을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 사랑한다면서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조실록 · 1794년 6월 28일 · 우의정 이병모*
척서단을 내려보낸 바로 그날, 우의정 이병모가 같은 청을 또 올립니다. 큰 공사를 백성이 모르게 하면 겉으로만 편할 뿐이라며, 들어갈 품을 헤아려 각 도에 나누어 맡기자고 했습니다.
임금의 답도 실록에 있습니다. 임금의 정치란 사람을 사랑하고 백성을 부리는 것뿐이다, 사랑한다면서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함부로 부리지 않는 뜻을 먼저 알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근년에 처음 보는 더위
近日炎熱, 近年初有; 昨今熱暘, 近日中初見
— 요사이 더위는 근년에 처음 있는 것이고, 어제오늘의 뙤약볕은 요사이 중에도 처음 본다
*정조실록 · 1794년 7월 6일*
近日炎熱, 近年初有; 昨今熱暘, 近日中初見
— 요사이 더위는 근년에 처음 있는 것이고, 어제오늘의 뙤약볕은 요사이 중에도 처음 본다
*정조실록 · 1794년 7월 6일*
약을 내려보낸 지 여드레 뒤, 더위는 더 심해집니다. 임금이 다시 글을 내립니다.
요사이 더위는 근년에 처음 있는 것이고, 어제오늘의 뙤약볕은 그중에도 처음 본다.
그러고는 앞서 나눠 준 척서단을 두고, 마음을 보인 것일 뿐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고 적었습니다. 돌 뜨는 곳과 기와 굽는 곳은 뙤약볕에 그대로 서 있는 자리이니 서늘해질 때까지 일을 멈추게 했습니다.
성보다 급한 것
城役固非不急之務, 其爲勤衆勞民則一也
— 성 쌓는 일이 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사람을 몰아 수고롭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조실록 · 1794년 7월 11일*
城役固非不急之務, 其爲勤衆勞民則一也
— 성 쌓는 일이 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사람을 몰아 수고롭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조실록 · 1794년 7월 11일*
닷새 뒤, 수원을 다스리던 조심태가 비를 비는 제사를 지냈다고 알려 옵니다. 임금의 답이 이렇습니다.
성 쌓는 일이 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사람을 몰아 고생시키는 것은 마찬가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을 몰아 성을 쌓으면 가뭄이 든다고 했다며, 비가 오거나 서늘해질 때까지 그만두라 했습니다. 그해 여름 화성 공사는 실제로 멈춰 섰습니다.
옥 안에 물동이
因念罪囚在牢獄, 暑氣易著, 或致殞命, 誠可哀也
— 죄수가 옥에 있으면 더운 기운이 쉽게 닿아 목숨을 잃기도 하니 참으로 슬프다
*세종실록 · 1448년 7월 2일*
因念罪囚在牢獄, 暑氣易著, 或致殞命, 誠可哀也
— 죄수가 옥에 있으면 더운 기운이 쉽게 닿아 목숨을 잃기도 하니 참으로 슬프다
*세종실록 · 1448년 7월 2일*
더위로 사람이 죽는 일을 나라가 적어 둔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1448년 여름, 세종이 비서실인 승정원에 물었습니다.
죄수가 옥에 있으면 더운 기운이 쉽게 닿아 목숨을 잃기도 하니 참으로 슬프다. 동이에 물을 담아 옥 안에 두고 자주 갈아 손을 씻게 하면 어떻겠는가.
승정원은 그런 법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답했고, 임금은 집현전에 옛 제도를 뒤져 보라 했습니다.
남은 문장
或因木石, 或因疾病而殞命者有之, 予甚愍焉
— 혹은 나무와 돌에 치이고 혹은 병으로 목숨을 잃은 자가 있으니 내가 심히 민망하다
*태조실록 · 1394년 2월 29일*
或因木石, 或因疾病而殞命者有之, 予甚愍焉
— 혹은 나무와 돌에 치이고 혹은 병으로 목숨을 잃은 자가 있으니 내가 심히 민망하다
*태조실록 · 1394년 2월 29일*
사백 년 전에도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1394년, 도성을 고치는 일에 불려 나갔다가 나무와 돌에 치이거나 병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며, 그 집의 부역을 삼 년 면제하고 이름을 적어 올리라 했습니다.
약 사천 알이 그해 더위를 얼마나 막았는지는 기록에 없습니다. 다만 무엇을 걱정했고 언제 일을 멈췄는지가 날짜와 함께 남았습니다.
남은 것은 문장뿐이지만, 그 문장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