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는 논의된 바 없다 — 1969년 국회의 답변, 그리고 그 뒤」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훈련이 먼저였다 | 제7대 제68회 제3차 국회본회의 · 1969년 3월 5일 |
| 이 년 뒤 | 제8대 제77회 제7차 국회본회의 · 1971년 8월 7일 |
| 대견스럽게 지켜보면서 | 제8대 제77회 제9차 국회본회의 · 1971년 8월 10일 |
| 기정사실 | 제9대 제97회 제1차 국회본회의 · 1977년 6월 21일 |
| 못 할 것이다 | 제9대 제97회 제2차 국회본회의 · 1977년 6월 22일 |
|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 제10대 제101회 국회본회의 · 1979년 3월 19일 |
| 변경 또는 조정 | 제10대 제101회 제6차 국회본회의 · 1979년 3월 23일 |
| 그대로 두고 | 제10대 제102회 제1차 국회본회의 · 1979년 7월 21일 |
훈련이 먼저였다

오끼나와 기지를 철수한다든지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든지
— 훈련의 뜻이 무엇이냐고 의원이 물었다
*제7대 제68회 제3차 국회본회의 · 1969년 3월 5일*
오끼나와 기지를 철수한다든지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든지
— 훈련의 뜻이 무엇이냐고 의원이 물었다
*제7대 제68회 제3차 국회본회의 · 1969년 3월 5일*
훈련 한 번 했을 뿐인데 국회가 술렁였습니다. 1969년입니다.
그해 봄, 한국군과 미군이 큰 훈련을 함께 했습니다. 병력을 비행기로 실어 나르는 훈련이었습니다. 3월 5일, 한 의원이 이 훈련을 국회에서 꺼냅니다. 훈련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 훈련이 무엇을 준비하는 거냐고 물은 겁니다.
속기록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오끼나와 기지를 철수한다든지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든지, 미 본토 중심으로 군사작전을 전환할 수 있는 예비모의작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훈련하는 걸 보고 철수를 떠올린 겁니다.
변경이 없다

미국의 극동전략은 한마디로 말씀드려서 변경이 없다고 봅니다
— 극동전략에 변경은 없다고 국방부장관이 답했다
*제7대 제68회 제3차 국회본회의 · 1969년 3월 5일*
미국의 극동전략은 한마디로 말씀드려서 변경이 없다고 봅니다
— 극동전략에 변경은 없다고 국방부장관이 답했다
*제7대 제68회 제3차 국회본회의 · 1969년 3월 5일*
국방부장관이 답합니다. 미국의 극동전략은 한마디로 말씀드려서 변경이 없다고 봅니다.
극동은 미국에서 볼 때 가장 먼 동쪽, 한국과 일본이 있는 이쪽 지역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이 이 지역을 어떻게 지킬지 짜 놓은 큰 그림, 그게 안 바뀐다는 얘기였습니다.
근거도 댔습니다. 얼마 전 동해안으로 무장 간첩이 들어왔을 때 미국이 장비 지원을 약속했고, 이번 훈련도 한국을 어떻게 지킬지 실제로 점검해 보려고 몇 달 전부터 준비한 것이라고요.
종이에 적힌 계획보다 정말 되는지 해 보는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 그 말이 뒤에 붙었습니다.
논의된 바도 없다

주한미군 철수도 논의된 바도 없고 또 철수되어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없었고, 안 되고, 될 수 없다고 세 번 겹쳐 말했다
*제7대 제68회 제3차 국회본회의 · 1969년 3월 5일*
주한미군 철수도 논의된 바도 없고 또 철수되어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 없었고, 안 되고, 될 수 없다고 세 번 겹쳐 말했다
*제7대 제68회 제3차 국회본회의 · 1969년 3월 5일*
이어서 철수 그 자체를 묻자, 답이 이렇게 나옵니다.
주한미군 철수도 논의된 바도 없고, 또 철수되어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서 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씀을 드립니다.
논의한 적도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럴 수도 없다. 한 문단 안에서 세 번을 겹쳐 말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 년 뒤

선 보장 후 감군이라고 절대반대를 해서 외교를 했는데
— 그때 요구한 조건과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의원이 물었다
*제8대 제77회 제7차 국회본회의 · 1971년 8월 7일*
선 보장 후 감군이라고 절대반대를 해서 외교를 했는데
— 그때 요구한 조건과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의원이 물었다
*제8대 제77회 제7차 국회본회의 · 1971년 8월 7일*
1971년, 미군 한 개 사단이 한국을 떠납니다. 2만 명, 사단 하나가 통째로 빠진 겁니다.
정부가 내건 방침은 이랬습니다. 먼저 보장을 받고, 그다음에 줄인다. 선 보장 후 감군입니다.
그해 8월 7일 본회의에서 한 의원이 외무부장관에게 묻습니다. 주한미군 감군을 선 보장 후 감군이라고 절대반대를 해서 외교를 했는데, 그때 우리가 요구한 조건하고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받기로 한 건 받았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답은 우리 군을 줄이는 문제와 미군을 줄이는 문제를 갈라 놓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대견스럽게 지켜보면서

휴전선 일대의 방위를 한국군이 전담하게 된 것을
— 재배치가 안보를 저해함이 없이 이룩됐다고 적었다
*제8대 제77회 제9차 국회본회의 · 1971년 8월 10일*
휴전선 일대의 방위를 한국군이 전담하게 된 것을
— 재배치가 안보를 저해함이 없이 이룩됐다고 적었다
*제8대 제77회 제9차 국회본회의 · 1971년 8월 10일*
사흘 뒤, 같은 회기 기록에는 결이 다른 문장이 남습니다.
휴전선 일대의 방위를 한국군이 전담하게 된 것을 서로 대견스럽게 지켜보면서, 이 재배치가 한국의 안보를 저해함이 없이 이룩됐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한쪽은 약속받은 게 어떻게 됐느냐고 따졌고, 다른 쪽은 대견하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일을 두고 나온 두 문장이 사흘 사이에 같은 회의록에 들어 있습니다.
기정사실

4~5년 내에 지상군을 철수하겠다는 것을 공표한 이상
— 일단 기정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대비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제9대 제97회 제1차 국회본회의 · 1977년 6월 21일*
4~5년 내에 지상군을 철수하겠다는 것을 공표한 이상
— 일단 기정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대비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제9대 제97회 제1차 국회본회의 · 1977년 6월 21일*
1977년에는 방향이 거꾸로였습니다. 이번엔 미국이 먼저 말을 꺼냅니다. 새로 들어선 미국 행정부가 한국에 있는 지상군을 단계적으로 빼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6월 21일, 국무총리가 본회의에서 말합니다. 4~5년 내에 지상군을 철수하겠다는 것을 공표한 이상, 우리는 일단 이를 기정사실이라는 전제하에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해 나가야 하겠읍니다.
기정사실. 이미 정해진 일로 치자는 뜻입니다. 4~5년이면 1981년이나 1982년쯤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끼리 지킬 준비를 하자는 말이었습니다.
1969년에는 논의된 적도 없다고 했고, 1977년에는 이미 정해진 일이라고 했습니다.
못 할 것이다
막상 대통령이 되면 철군을 못 할 것이다
—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의원이 털어놓았다
*제9대 제97회 제2차 국회본회의 · 1977년 6월 22일*
막상 대통령이 되면 철군을 못 할 것이다
—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의원이 털어놓았다
*제9대 제97회 제2차 국회본회의 · 1977년 6월 22일*
그런데 바로 다음 날, 한 의원이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막상 이 미군철수 그런 것은 대한민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미국 자신들을 위해서 주둔하고 있는 것이니까, 후보 시절 정견으로 내놓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면 철군을 못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거 때 한 말일 뿐 실제로는 못 뺄 거라고 봤다는 겁니다. 이미 정해진 일이라는 말과, 못 뺄 거라던 생각이 하루 사이에 나란히 적혔습니다.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철군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 논란 속에서도 철군은 진행되고 있다고 개회사에 적혔다
*제10대 제101회 국회본회의 · 1979년 3월 19일*
철군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 논란 속에서도 철군은 진행되고 있다고 개회사에 적혔다
*제10대 제101회 국회본회의 · 1979년 3월 19일*
1979년 3월 19일, 국회 개회식에서 의장이 말합니다.
바야흐로 국내외에서는 미 지상군 철수를 위요하고 논란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철군은 그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위요하고는 둘러싸고라는 뜻입니다. 말이 많은 건 많은 거고, 병력은 실제로 빠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미 전해에 전투 병력 일부가 나간 뒤였습니다.
변경 또는 조정
현 철수계획은 변경 또는 조정이 돼야 할 것이 아니냐
— 나흘 뒤 국방부장관은 다른 말을 했다
*제10대 제101회 제6차 국회본회의 · 1979년 3월 23일*
현 철수계획은 변경 또는 조정이 돼야 할 것이 아니냐
— 나흘 뒤 국방부장관은 다른 말을 했다
*제10대 제101회 제6차 국회본회의 · 1979년 3월 23일*
그런데 나흘 뒤, 같은 회의장에서 국방부장관이 다른 말을 합니다.
이번의 철군 잠정중지 발표는, 북한 군사력이 만일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도 현저히 증강된 것이 판명이 된다면 현 철수계획은 변경 또는 조정이 돼야 할 것이 아니냐, 이렇게 저는 생각을 합니다.
빼는 걸 잠시 멈췄다는 겁니다. 같은 날 외무부장관은 정책 자체를 접은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잠시 멈춘 거냐, 그만둔 거냐. 답변이 갈렸습니다.
그대로 두고
미 지상전투부대를 그대로 두고 한미연합군사령부도 계속 운영할 것이며
— 넉 달 뒤 국무총리는 이렇게 보고했다
*제10대 제102회 제1차 국회본회의 · 1979년 7월 21일*
미 지상전투부대를 그대로 두고 한미연합군사령부도 계속 운영할 것이며
— 넉 달 뒤 국무총리는 이렇게 보고했다
*제10대 제102회 제1차 국회본회의 · 1979년 7월 21일*
그해 7월 21일, 국무총리가 본회의에 보고합니다.
당초 철군계획과는 달리, 지원부대 인원을 1980년 말까지 다소 감축하는 것 이외에는 미 지상전투부대를 그대로 두고 한미연합군사령부도 계속 운영할 것이다.
지원부대는 싸우는 부대를 뒤에서 받쳐 주는 부대입니다. 그쪽 인원만 조금 줄이고, 싸우는 부대는 그대로 둔다. 사실상 철군을 접은 겁니다.
논의한 적도 없다던 철수는 2년 뒤에 일어났고, 이미 정해진 일이라던 철군은 2년 뒤에 멈췄습니다. 속기록은 그때그때 나온 말을 적어 두었을 뿐, 어느 쪽이 맞았는지는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흐를지, 기록은 아직 말하지 않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