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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라는 이름이 지워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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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오늘이 처서연산군일기 · 1505년 7월 14일
왕명을 전하던 사람연산군일기 · 1503년 9월 9일
하옥연산군일기 · 1504년 7월 16일
술자리에서연산군일기 · 1505년 4월 1일
같은 이름을 쓰지 마라연산군일기 · 1505년 6월 16일
모든 문서에서연산군일기 · 1505년 7월 19일
돌에 새겨 묻어라연산군일기 · 1506년 3월 13일
반정 뒤에 갈린 말중종실록 · 1506년 11월 24일

오늘이 처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오늘이 처서입니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절기인데 올해는 그 말이 무색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 아예 지워진 해가 있었습니다. 1505년, 임금이 달력에서 처서라는 글자를 빼라고 명합니다. 날씨가 바뀌어서가 아닙니다. 죽은 사람 이름에 그 글자가 들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왕명을 전하던 사람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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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처선은 궁궐에서 일하던 환관입니다. 1503년 기록에 임금이 그를 보내 신하에게 글을 전하게 했다고 나옵니다. 임금의 말을 대신 전하는 자리였으니 가까이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때 이미 나이가 많았습니다. 단종 때 유배를 갔다가 풀려나고, 세조 때 관노가 되었다가 다시 풀려나고, 공신 명단에까지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하옥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1504년 여름, 기록이 달라집니다. 내관 김처선에게 무례한 일이 있으니 마땅히 벌해야 한다. 곤장 백 대를 돈으로 대신하게 하라. 같은 날 또 한 줄이 나옵니다. 내관 김처선을 하옥하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적히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사람이 임금에게 무언가를 말했다는 것만 남았습니다.

술자리에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이듬해 봄, 김처선은 궁궐 안에서 죽습니다. 양자 이공신도 함께 죽었습니다. 실록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김처선의 죄를 바깥 사람은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왕이 처선에게 술을 권했는데 처선이 취하여 간하는 말을 했다. 왕이 노하여 직접 칼을 잡아 그 손발을 자르고 쏘아 죽였다. 사관이 「사람들이 말하기를」이라고 적은 것은, 자기도 직접 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죽인 뒤에 한 일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죽인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 명령이 이어집니다. 재산을 몰수하고, 살던 집을 헐어 못을 파고, 본관인 전의라는 고을 자체를 없애라. 사람 하나 때문에 고을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에는 부모의 무덤을 뭉개고 석물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이틀 뒤에는 대를 이으라고 들인 아들까지 연좌시키라고 했습니다.

같은 이름을 쓰지 마라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두 달 뒤에는 이런 명이 내려옵니다. 동반과 서반의 크고 작은 관원, 그리고 군사 가운데 김처선과 이름이 같은 자는 모두 고치게 하라. 나라 안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었을 겁니다.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이름을 바꿔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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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서 지운 두 글자

그리고 그해 칠월, 오늘 이야기의 그 명령이 나옵니다. 일력에 있는 처서의 처 자가 죄인 김처선의 이름 자와 같으니, 조서로 고치라. 일력은 나라가 만들어 배포하던 달력입니다. 절기는 농사를 짓고 세금을 걷는 기준이었습니다. 그 기준의 이름을, 죽은 환관 하나의 이름 때문에 바꾼 것입니다. 처서는 그해 조서가 되었습니다.

모든 문서에서

닷새 뒤에는 범위가 더 넓어집니다. 처 자는 죄인 김처선의 이름이다. 이제부터 모든 문서에 처 자를 쓰지 말라. 처는 흔한 글자입니다. 처리하다, 처분하다, 곳이라는 뜻으로도 씁니다. 그해 십이월, 사인 성몽정이 교서를 지으면서 그 글자를 썼다가 사헌부에 넘겨질 뻔했습니다. 따져 보니 금지령이 내리기 전에 쓴 것이어서 겨우 풀려났습니다.

돌에 새겨 묻어라

이듬해 삼월에는 마지막 명령이 내려옵니다. 죄인 김처선의 집을 그날로 헐고 못을 파라. 그리고 죄명을 돌에 새겨 그 집 길가에 묻고 담을 쌓으라. 지나가는 사람이 보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이름을 지우면서, 동시에 죄명은 돌에 새겨 남기려 했습니다.

반정 뒤에 갈린 말

그해 가을 연산군이 쫓겨납니다. 그리고 조정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폐왕 때 온 조정 신하가 다 눈치를 보며 따랐는데, 오직 김처선만이 직언으로 죽었다. 상을 내려 선비의 기풍을 세우자는 청이었습니다. 임금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육 년 뒤 책을 만들면서 다시 묻자, 이번에는 이렇게 답합니다. 김처선은 취하여 망령된 말을 한 것이지 직언에 뜻이 있던 것이 아니다. 기록할 것이 못 된다.

남은 문장

그런데 이백사십육 년이 지난 1751년, 영조가 김처선의 정문을 세우라고 명합니다. 여러 번 충성으로 간했기에 연산군이 미워하여 범 굴에 던졌으나 범이 먹지 않자 묶어서 죽였다, 그 충렬이 늠름하다. 이십사 년 뒤에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당시에 처 자를 피하기까지 했으니 그 충성이 가상하다.

이름을 지운 일이 도리어 그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지우라는 명령도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지우려 했는지가 남으면, 지운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도 함께 남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오늘이 처서,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505년, 임금이 달력에서 처서라는 글자를 빼라고 명합니다.

왕명을 전하던 사람,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503년 기록에 임금이 그를 보내 신하에게 글을 전하게 했다고 나옵니다.

하옥,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504년 여름, 기록이 달라집니다.

출처

연산군일기 · 중종실록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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