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 15%…조선 500년 기록에 「관세」는 0번이었다 (본편)
숫자로 먼저
| 항목 | 값 |
|---|---|
| 가계신용 2,019.8조원 · 2026년 | 2분기 |
| 환곡 1,250건 · 사람끼리 진 빚 | 214건 |
| 탕감 490건 · 환곡과 함께 적힌 것 | 111건 |
| 국회 「가계부채」 1,052건 · 「채무조정」 | 518건 |
2,000조를 처음 넘었다

가계 빚이 2,019조원을 넘었습니다. 2,000조를 넘은 것은 처음입니다.
한 분기에 25조가 늘었고, 4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폭입니다. 집을 사려고 빌리고, 주식을 사려고 빌렸습니다.
조선에도 빚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려준 쪽이 달랐습니다.
조선의 빚은 나라가 빌려준 것이었다

실록에서 사람끼리 진 빚을 적은 기사는 214건입니다. 고리대를 적은 것이 245건입니다.
그런데 환곡을 적은 기사는 1,250건입니다. 여섯 배가 넘습니다.
환곡은 나라가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거두는 제도입니다. 조선에서 빚이라 하면 대개 이것이었습니다. 빌려준 쪽이 은행이 아니라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나라는 자주 덜어 줬다

거두지 못한 것을 덜어 준 기록, 탕감은 490건입니다. 그중 111건이 환곡과 함께 적혔습니다.
시대별로 보면 뒤로 갈수록 몰립니다. 환곡을 가장 촘촘히 적은 것은 정조 대로, 1만 기사당 145.9건입니다. 영조와 순조가 그 뒤를 잇습니다.
빌려주는 일과 덜어 주는 일이 나란히 늘었습니다.
1666년, 백 석을 덜어 받은 집

1666년 11월, 영의정 정태화가 아룁니다.
환곡 미납분을 특별히 탕감하라 명하신 것은 백성을 돌보는 뜻이 지극합니다. 다만 요즘 거짓이 늘어, 가난한 백성은 실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선산의 부잣집이 거짓으로 이름을 올려 덜어 받은 것이 백 석에 이릅니다.
임금이 묻습니다. 그 부잣집이 누구인가.
답은 이랬습니다. 임금을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 이동명의 형입니다.
1673년, 없는 해가 없었다

칠 년 뒤, 부교리 신익상이 상소를 올립니다.
조정이 백성의 일을 걱정하여, 환곡을 덜어 주라는 명령이 없는 해가 없습니다. 그런데 토호는 독촉 앞에서도 태연하고, 백성은 논밭을 팔아서까지 다 갚고, 밤낮으로 원통함을 호소하나 하소연할 데가 없습니다.
덜어 주는 제도는 있었습니다. 매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에게 갔는지가 문제였습니다.
지금 국회가 말하는 것

지금 국회 회의록에서 「가계부채」라는 말이 나온 회의는 1,052번입니다.
「채무조정」이나 「개인회생」, 「신용회복」이 나온 회의는 518번입니다. 「영끌」과 「빚투」는 178번입니다.
빚을 말한 자리의 절반쯤에서 덜어 주는 이야기가 함께 나옵니다. 조선에서 환곡 1,250건 옆에 탕감 490건이 있던 것과 비슷한 비율입니다.
기록이 남긴 것
조선의 기록이 남긴 것은 이것입니다.
덜어 주는 제도를 만드는 일보다, 그것이 누구에게 가는지를 지키는 일이 더 어려웠습니다. 명령은 매년 내려갔지만 백 석을 덜어 받은 것은 부잣집이었고, 논밭을 판 것은 백성이었습니다.
빚을 줄이는 방법을 논의할 때 함께 보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덜어 주는가와 함께, 그것이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숫자로 본 한국사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2,000조를 처음 넘었다,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가계 빚이 2,019조원을 넘었습니다. 2,000조를 넘은 것은 처음입니다.
조선의 빚은 나라가 빌려준 것이었다,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실록에서 사람끼리 진 빚을 적은 기사는 214건입니다. 고리대를 적은 것이 245건입니다.
그리고 나라는 자주 덜어 줬다,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거두지 못한 것을 덜어 준 기록, 탕감은 490건입니다. 그중 111건이 환곡과 함께 적혔습니다.
출처
현종실록 · 조선왕조실록 · 정조실록을 참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