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 훈련…임금이 물었다 "왜 늘 이상 없다고만 하는가"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임금의 물음 | 연산군일기 · 1497년 10월 2일 |
| 사변인데 하나 | 성종실록 · 1478년 2월 16일 |
| 곤장 여든 대 | 세종실록 · 1423년 1월 28일 |
| 참형에 해당한다 | 성종실록 · 1477년 4월 12일 |
| 아뢴 그날 | 중종실록 · 1544년 4월 18일 |
| 무너질 형세 | 중종실록 · 1544년 8월 19일 |
| 구름이 껴서 | 비변사등록 · 1689년 12월 30일 |
| 가르치지 않았다 | 비변사등록 · 1729년 4월 14일 |
임금의 물음

오늘 오후 두 시, 전국에 대피 훈련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오백 년 전, 조선의 임금이 병조에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자리에 오른 지 오래인데, 봉수는 매번 아무 일 없다고 아뢴다. 그런데 사변은 있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병조의 대답

병조가 답합니다. 규정은 이렇습니다. 평시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국경을 넘으면 넷, 싸움이 붙으면 다섯.
그리고 덧붙입니다. 요즘 왜변이 있었으나 이는 좀도둑질이라, 이미 약탈하고 간 뒤에야 알게 되니 뒤늦게 봉수를 올릴 수는 없습니다.
임금은 알겠다고만 했습니다.
사변인데 하나

이십 년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정월 스무여드레에 전라도 순천 돌산포, 이월 초이틀에 경상도 남해 적량에 사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봉수는 평시대로 불 하나만 올렸습니다.
기록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변고를 알리는 뜻이 전혀 없었다. 임금은 관련된 곳을 차례로 추궁해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곤장 여든 대

더 앞선 기록도 있습니다.
적이 평안도 여연군에 쳐들어왔는데, 태일 봉수를 맡은 황연이 불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법대로면 곤장 백 대에 먼 변방으로 보내는 형입니다. 다만 병조가 사람들이 끌려간 것은 봉화를 안 올린 탓만은 아니라고 하여, 여든 대로 줄었습니다.
참형에 해당한다

1477년에는 형조가 이렇게 아룁니다.
당포 만호가 멋대로 병선을 보내 고기를 잡다가 왜인을 만나 옷과 군장을 빼앗겼다. 그때 봉수군 윤원기와 김원경이 봉화를 올리지 않았는데, 그 죄는 참형에 해당한다.
임금은 그대로 따르되, 윤원기 등은 죽음을 면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뢴 그날

그리고 이 문장이 남았습니다.
얼마 전 조회에서 어전에 봉수가 무사하다고 아뢰었는데, 왜변이 일어난 것이 바로 그날이었다.
같은 날입니다. 아무 일 없다는 보고가 올라간 그날에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하는 이어서 말합니다. 봉수의 일이 지극히 허술합니다.
무너질 형세
같은 해 여름, 경연에서 한 관원이 말합니다.
요즘 나라가 무너질 형세인데, 봉수 한 가지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왜선이 목도에 나타났을 때 평안도의 불만 올랐을 뿐 다른 보고는 없었습니다.
임금이 답합니다. 연해 각 고을에서 불을 올리더라도 중간에 올리지 않는 폐단이 있으니, 적발해 죄를 물으라.
구름이 껴서
이백 년이 흐른 뒤, 북쪽 지방을 돌아본 암행어사가 폐단 다섯 가지를 아룁니다. 그 첫째가 봉수였습니다.
변방의 경보는 오직 봉수에 달려 있는데, 북쪽에서 오는 불을 번번이 구름이 어둡다는 핑계로 올리지 않는다.
핑계가 하나 있으면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말 구름이 꼈는지, 보지 않았는지는 산 위에 있던 사람만 아니까요.
가르치지 않았다
1729년, 한 무관이 임금 앞에서 겪은 일을 말합니다.
가까운 봉수대가 평소처럼 불 하나만 올리고 아무 보고가 없기에, 봉군을 불러 물었더니 전혀 모르더랍니다. 그가 규정을 일러 주고 다른 봉수대로 신호를 보냈는데, 끝내 아무 곳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랬습니다. 오래 평화로워 고을 수령이 봉군 머릿수만 채우고 규정을 가르치지 않았다.
흩어진 답
임금이 물었던 그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봉수는 늘 무사하다는데, 사변은 왜 있는가.
기록을 따라가면 답이 한군데 있지 않습니다. 규정을 안 가르쳐서, 구름을 핑계 대서, 이미 지나간 뒤에 알아서, 오래 아무 일이 없어서.
남은 자리
지금도 산마다 이런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돌을 쌓아 만든 낮은 단이고, 대부분은 안내판 하나가 서 있을 뿐입니다.
무너진 것은 봉수대가 아니었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보고와 실제 사이의 간격이었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사변인데 하나
정월 스무여드레에 전라도 순천 돌산포, 이월 초이틀에 경상도 남해 적량에 사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봉수는 평시대로 불 하나만 올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