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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배짜리 돈을 찍은 나라 — 1866년 당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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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미리 말한 사람고종실록 · 1866년 11월 6일 · 판부사 조두순
그래도 찍기로 하다고종실록 · 1866년 11월 6일
이달 열흘부터고종실록 · 1866년 12월 1일
셋에 둘고종실록 · 1866년 12월 2일 · 의정부 계
그 전해의 효수고종실록 · 1866년 2월 25일
먼저 베고 뒤에 아뢰라고종실록 · 1867년 3월 2일 · 의정부 계
그해에만고종실록 · 1867년 11월 22일 · 의정부 계
반년 만에고종실록 · 1867년 6월 3일 · 의정부 계
물가가 오르다고종실록 · 1868년 2월 30일
혁파의 예고종실록 · 1874년 2월 5일 · 영의정 이유원

미리 말한 사람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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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돈 값 이야기가 자주 들립니다. 백육십 년 전에는 나라가 백 배짜리 돈을 찍었습니다.

1866년 늦가을, 정부가 당백전을 만드는 문제로 의견을 모읍니다. 당백전은 이름 그대로 한 닢을 옛 엽전 백 닢으로 쳐 주겠다는 동전입니다.

원로 대신 조두순의 답이 이랬습니다. 당십이든 당백이든 만들기는 쉽고 남는 것은 어마어마하다. 놀고먹는 자들이 몰래 찍어 내면 날마다 몇 곱절을 벌 텐데, 그건 죽인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것이 내가 몹시 걱정하는 바다.


그래도 찍기로 하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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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우의정 유후조는 다르게 답했습니다. 나라 살림은 들어오는 것을 헤아려 쓸 것을 정하는 일인데 지금은 나라 곳간도 백성 살림도 어느 때보다 어렵다, 당백전을 찍자는 것은 옛일을 살펴 지금에 맞춘 계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대신들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결정은 그 자리에서 났습니다. 호조가 도맡아 시행하고 찍는 곳은 금위영으로 하라. 호조는 나라 살림을 맡던 부서이고, 금위영은 서울을 지키던 군대입니다.


이달 열흘부터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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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에서 스무닷새 만에, 돈 찍는 곳에서 보고가 올라옵니다. 당백전을 열흘 뒤부터 쓰게 한다.

실록에 남은 이 기사는 스물한 자입니다. 논의를 시작해서 시중에 풀리기까지 한 달 남짓 걸렸습니다.


셋에 둘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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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정부가 뒷수습을 아룁니다. 관청에 내는 돈과 고을에서 올리는 세금은 새 돈 삼분의 이, 옛 돈 삼분의 일로 섞어 편한 대로 내게 하자는 것이었고, 임금이 허락했습니다.

나라가 세금을 받을 때 새 돈을 셋 중 둘까지는 받아 주겠다는 뜻입니다. 뒤집어 보면, 그렇게 정해 주지 않으면 아무도 받지 않을 돈이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전해의 효수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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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몰래 만드는 일은 새 돈이 나오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같은 해 봄, 함경도에서 몰래 돈을 찍던 이영운과 김문호를 목 베어 내걸라는 명이 내려집니다. 본보기로 삼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조두순이 죽인다고 막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이런 처형이 이미 있고 난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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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베고 뒤에 아뢰라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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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돈이 돌기 시작한 지 석 달 만인 1867년 봄, 포도청이 몰래 돈을 찍은 죄인 다섯을 잡아 가뒀다고 보고합니다. 정부의 처분은 이랬습니다.

모두 군영으로 내보내 군사와 백성을 크게 모아 놓고 목 베어 본보기로 삼으라. 이 뜻을 전국에 알려, 몰래 돈 찍는 자가 있으면 낱낱이 조사해 주범이든 공범이든 가리지 말고 먼저 베고 나중에 보고하라.


그해에만

처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 달 뒤에는 이기화와 김진성을 전주 감영에서 목 베게 했고, 그해 겨울에는 우정순, 최순홍, 이연성 세 사람이 모두 자백했다며 군영으로 내보내 목 베고, 달아난 공범도 기한을 정해 뒤쫓으라 했습니다.

한 해 동안 실록에 이름이 적힌 채 처형된 사람만 열 명입니다.


반년 만에

그리고 1867년 여름, 정부 보고에 한 문장이 지나가듯 들어 있습니다. 당백전은 지난번에 이미 찍기를 그만두었다.

시중에 풀린 지 반년이 되기 전입니다. 찍는 일은 그렇게 끝났지만, 이미 나온 돈은 그대로 시중에 남았습니다.


물가가 오르다

1868년 봄, 실록은 상황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관청과 민간에서 돈을 바꿔 준 뒤로 시골에서는 두 돈을 아예 쓰지 않고, 서울에서도 절반은 옛 엽전 절반은 새 돈이라야 사고팔 수 있게 되었으며, 물가는 따라서 더 치솟고 민심은 점점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조정은 어사 열두 명을 각 도로 내려보냅니다. 다른 것은 보지 말고 오직 당백전이 잘 돌아가는지 그 한 가지만 조사하라, 당백전이 막힘없이 도는 것이 곧 고을 수령의 으뜸가는 성적이라는 지시였습니다.


혁파의 예

여덟 해 뒤인 1874년, 영의정 이유원이 다른 돈을 정리하는 방법을 아룁니다. 당백전을 없앤 전례대로 한곳에 모아 녹여서 쇠붙이로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백 닢으로 쳐 주겠다던 돈이, 실록에 마지막으로 나올 때에는 녹여 쇠로 쓰는 물건의 본보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일을 걱정한 문장은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죽인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던 그 말이, 찍기로 결정한 바로 그 회의록에 나란히 적혀 있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미리 말한 사람,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866년 늦가을, 정부가 당백전을 만드는 문제로 의견을 모읍니다.

먼저 베고 뒤에 아뢰라,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새 돈이 돌기 시작한 지 석 달 만인 1867년 봄, 포도청이 몰래 돈을 찍은 죄인 다섯을 잡아 가뒀다고 보고합니다.

반년 만에,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1867년 여름, 정부 보고에 한 문장이 지나가듯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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