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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2026년 08월 28일·5분 분량·원자료 직접 집계

공습경보…600년 전 남산엔 방향이 다른 봉화 5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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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남산 위에 다섯세종실록 · 1423년 2월 26일
시험 삼아 올려 보다중종실록 · 1532년 9월 25일
실제로 울린 날고종실록 · 1864년 2월 28일
없애기 시작하다고종실록 · 1877년 7월 25일

남산 위에 다섯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京城南山烽火五所

— 서울 남산의 봉화 다섯 곳

*세종실록 · 1423년 2월 26일*

京城南山烽火五所

— 서울 남산의 봉화 다섯 곳

*세종실록 · 1423년 2월 26일*

오늘 오후 두 시, 전국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육백 년 전에도 서울에는 전국의 위험이 모이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남산입니다. 그런데 봉화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다섯이었습니다.

왜 다섯이었을까요.

어디서 온 불인가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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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第一烽火 自咸吉江原道來

— 동쪽 첫째 봉화, 함길도와 강원도에서 온다

*세종실록 · 1423년 2월 26일*

東第一烽火 自咸吉江原道來

— 동쪽 첫째 봉화, 함길도와 강원도에서 온다

*세종실록 · 1423년 2월 26일*

병조가 직접 산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어느 봉화가 어디서 오는 소식을 받는지 하나하나 적어 두었습니다.

첫째는 함길도와 강원도. 둘째는 경상도. 셋째는 평안도. 넷째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바닷길. 다섯째는 양주 쪽입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셋째 자리에 불이 붙었다면 북쪽 육로입니다. 넷째라면 서해 바닷길이죠. 같은 위험이라도 어디를 막아야 하는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신호 하나에 두 가지를 담은 셈입니다. 얼마나 급한가, 그리고 어느 쪽인가.

시험 삼아 올려 보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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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初 慮烽燧不謹 潛使邊方 試驗擧之

— 나라 초에 봉수가 허술할까 염려해 몰래 변방에서 시험 삼아 올렸다

*중종실록 · 1532년 9월 25일*

國初 慮烽燧不謹 潛使邊方 試驗擧之

— 나라 초에 봉수가 허술할까 염려해 몰래 변방에서 시험 삼아 올렸다

*중종실록 · 1532년 9월 25일*

이 체계가 실제로 작동했는지, 조선은 시험까지 해 봤습니다.

나라를 세운 초기에 봉수가 허술할까 걱정되어, 변방에 몰래 사람을 보내 시험 삼아 불을 올리게 했습니다. 훈련이었던 셈이죠.

결과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닷새에서 엿새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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則五六日 乃至于京師

— 닷새나 엿새 만에 서울에 이르렀다

*중종실록 · 1532년 9월 25일*

則五六日 乃至于京師

— 닷새나 엿새 만에 서울에 이르렀다

*중종실록 · 1532년 9월 25일*

닷새에서 엿새 만에 서울에 닿았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느립니다. 그러나 말을 타고 달려도 몇 주가 걸리던 시절입니다. 국경의 일이 닷새 만에 도성에 전해진다는 것은 대단한 속도였습니다.

문제는 이 기록이 자랑으로 남은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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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 달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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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則雖一月 必不通矣

— 지금은 한 달이 걸려도 반드시 통하지 않을 것이다

*중종실록 · 1532년 9월 25일*

今則雖一月 必不通矣

— 지금은 한 달이 걸려도 반드시 통하지 않을 것이다

*중종실록 · 1532년 9월 25일*

같은 자리에서 신하가 이어서 말합니다. 지금은 한 달이 걸려도 반드시 통하지 않을 것이다.

닷새에서 한 달로. 아니, 아예 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체계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남산의 다섯 자리도 그대로였고, 규정도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작동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실제로 울린 날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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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德烽燧將韓昌國 以豆滿江越邊有異樣人現形馳告

— 망덕 봉수장 한창국이 두만강 건너편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고 달려가 알렸다

*고종실록 · 1864년 2월 28일*

望德烽燧將韓昌國 以豆滿江越邊有異樣人現形馳告

— 망덕 봉수장 한창국이 두만강 건너편에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고 달려가 알렸다

*고종실록 · 1864년 2월 28일*

그래도 작동한 날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864년 겨울, 함경도 경흥. 망덕 봉수대를 맡은 한창국이 두만강 건너편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난 것을 보고 달려가 알렸습니다.

봉수대를 지키던 사람의 이름이 실록에 남은,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얼음 위의 다섯 사람

江氷上 有人五名馬一匹

— 강 얼음 위에 사람 다섯과 말 한 필이 있었다

*고종실록 · 1864년 2월 28일*

江氷上 有人五名馬一匹

— 강 얼음 위에 사람 다섯과 말 한 필이 있었다

*고종실록 · 1864년 2월 28일*

부사가 직접 가서 보니 얼음 위에 사람 다섯과 말 한 필이 있었습니다.

기록은 그들의 생김새까지 적었습니다. 셋은 눈이 깊고 코가 높으며 눈동자가 푸르고 머리털이 붉었다. 머리를 밀고 검은 모자를 썼는데 놋그릇 모양이었고 챙이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처음 보는 눈으로 적어 둔 문장입니다.

없애기 시작하다

四烽臺 竝撤罷

— 네 개의 봉수대를 모두 철폐한다

*고종실록 · 1877년 7월 25일*

四烽臺 竝撤罷

— 네 개의 봉수대를 모두 철폐한다

*고종실록 · 1877년 7월 25일*

그리고 십여 년 뒤입니다.

함경도에서 봉수대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불암과 옛 봉수, 아래 봉수, 차산까지 네 곳을 모두 철폐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세종이 남산에 다섯 자리를 정한 지 사백오십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남산에 남은 것

지금 남산에 올라가면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원래 전국에서 오는 소식이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온 것인지까지 자리로 구분해 두었던 곳이고요.

오늘 울린 사이렌은 스무 분 만에 끝났습니다. 육백 년 전 남산의 불도, 대부분의 날은 하나였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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