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 15%…조선 500년 기록에 「관세」는 0번이었다 (본편)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그런데 이 말이 우리 기록에 없었습니다 | 삼국사기 · 고려사 · 조선왕조실록 정본 348,925기사 외 |
| 1879년, 편지 한 통 | 고종실록 · 고종 16년, 이유원과 이홍장이 주고받은 편지 |
| 1883년, 제도가 되다 | 고종실록 · 고종 20년, 조일통상장정 속약 |
15%라는 숫자가 붙기까지

미국이 우리 물건에 매기는 세금, 이른바 상호 관세가 15%로 정해진 것은 2025년 7월 30일입니다. 발효는 그해 8월 7일이었습니다.
원래 예고된 숫자는 25%였습니다. 발효를 이틀 앞두고 워싱턴에서 열린 협상에서 10%포인트가 내려갔습니다.
그 10%포인트에 붙은 조건

값이 내려간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와 에너지 1,000억 달러 구매가 조건으로 붙었습니다. 우리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에 붙던 25%도 15%로 함께 내려갔고, 쌀과 쇠고기는 더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올해 미국은 폴리실리콘과 웨이퍼에도 15%를 새로 매겼고, 정부는 반도체와 태양광 기업들을 불러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국회의 회의록에서 「관세」라는 말이 나온 회의는 3,958번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말을 이만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우리 기록에 없었습니다

기원전부터 오늘까지 남은 기록을 훑어 「관세」라는 말을 찾아봤습니다.
고대 기록에도, 고려 기록에도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조선 실록 전체에서도 딱 한 번 나옵니다.
그 한 번도 관세가 아니었습니다. 1723년 평안감사가 올린 글에 「서관의 세수」라고 적힌 것을, 앞뒤 두 글자가 붙어 그렇게 읽은 것입니다.
세금을 안 걷은 것이 아닙니다

같은 실록에서 세금을 걷었다는 말은 650번 넘게 나옵니다. 세금을 물렸다는 말이 116번, 관문에 선 시장을 뜻하는 관시가 66번입니다.
걷을 줄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물건이 오갈 때 값의 일부를 떼어 간다는 생각이, 그때는 없었던 것입니다.
1879년, 편지 한 통

이 말이 우리 기록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79년입니다. 청나라 사람 이홍장이 조선의 이유원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와 미국에도 문을 열라고 권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야 일본을 견제하고 러시아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권유 끝에 이런 문장이 붙습니다.
그 관세를 정한다면 군비에 적잖은 보탬이 될 것입니다.
관세는 장사 이야기로 들어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이야기로 들어왔습니다.
1883년, 제도가 되다

4년 뒤인 1883년, 조일통상장정이 맺어집니다. 해관이 배에 올라 짐을 봉하고, 해관세무사가 값을 매기고, 값이 맞지 않으면 다시 매기는 절차가 조문으로 적힙니다.
같은 해 영국, 독일과도 같은 조약을 맺습니다. 속약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갑니다. 조선 정부는 마땅히 바닷길과 육로의 관세를 하나로 고르게 하여야 한다.
고종·순종실록에서 관세는 39번, 개항 뒤 각사등록에서는 329번 나옵니다.
147년 뒤에도 같은 자리
관세는 우리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남이 권해서 들어왔고, 조약으로 제도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홍장이 든 이유가 무역이 아니라 군비였다는 점을 저는 오래 봤습니다. 관세는 처음부터 돈 문제가 아니라 힘 문제로 들어왔습니다.
147년이 지나 다시 협상 탁자에 관세가 올라와 있고, 그 옆에 투자와 에너지 구매가 함께 적혀 있습니다. 그 성격이 아직 바뀌지 않았다고 저는 그렇게 봅니다.
지금까지 숫자로 본 한국사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15%라는 숫자가 붙기까지,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미국이 우리 물건에 매기는 세금, 이른바 상호 관세가 15%로 정해진 것은 2025년 7월 30일입니다. 발효는 그해 8월 7일이었습니다.
그 10%포인트에 붙은 조건,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와 에너지 1,000억 달러 구매가 조건으로 붙었습니다. 우리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에 붙던 25%도 15%로 함께 내려갔고, 쌀과 쇠고기는 더 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우리 기록에 없었습니다,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그 한 번도 관세가 아니었습니다. 1723년 평안감사가 올린 글에 「서관의 세수」라고 적힌 것을, 앞뒤 두 글자가 붙어 그렇게 읽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