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한 해를 넘겼다…조선의 의녀는 나라 전체에 일곱 명이었다
한눈에 — 1418년 6월, 예조가 제생원의 보고를 그대로 올립니다. 1423년 12월, 예조가 아룁니다.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나라 전체에 일곱 명 | 태종실록 · 태종 18년 6월 21일 |
| 그런데 뽑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 세종실록 · 세종 5년 12월 27일 |
| 세종은 더 밀어붙였다 | 세종실록 · 세종 5년 3월 17일 |
| 얼마나 오래 걸렸나 | 조선왕조실록 정본 348,925기사 |
늘리자는 말이 1년을 넘겼다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릴 것인가. 이 논의가 한 해를 넘겼고, 결국 늘리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국회 회의록에서 「의료 인력」이라는 말이 나온 회의는 천삼백육십 번, 「의대 증원」이 나온 회의는 삼백구십이 번입니다.
늘리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조선도 같은 자리에 서 본 적이 있습니다.
나라 전체에 일곱 명

醫女共七名, 成才者五名, 諸處分遣, 每不足焉
— 의녀가 모두 일곱 명인데 재주를 이룬 자는 다섯 명입니다. 여러 곳에 나누어 보내면 늘 부족합니다
*태종실록 · 태종 18년 6월 21일*
1418년 6월, 예조가 제생원의 보고를 그대로 올립니다.
의녀가 모두 일곱 명인데 재주를 이룬 자는 다섯 명이고, 여러 곳에 나누어 보내면 늘 부족하다고.
나라 전체의 여성 의료인이 일곱 명이었습니다. 그중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다섯.
열 명을 더 두기로 했다

이어지는 청이 이렇습니다. 각 관사의 여종 가운데 나이 열세 살 이하인 자 열 명을 더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임금이 그대로 따랐습니다.
일곱 명에 열 명을 더합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작아 보이지만, 그때는 두 배가 넘게 늘린 것입니다.
그런데 뽑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濟生院醫女, 必先讀書識字後, 習讀醫方
— 제생원 의녀는 반드시 먼저 글을 읽고 글자를 안 뒤에 의방을 익힌다
*세종실록 · 세종 5년 12월 27일*
1423년 12월, 예조가 아룁니다.
의녀는 반드시 먼저 글을 읽고 글자를 안 뒤에 의방을 익힌다. 그러니 지방에서 뽑아 올리는 의녀도 살던 고을에서 천자문과 효경을 먼저 가르쳐, 글자를 대강 안 뒤에 올려보내소서.
사람을 뽑기 전에 글부터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세종은 더 밀어붙였다

擇年少穎悟三四人, 敦加敎訓, 使通文理
— 나이 어리고 총명한 서너 명을 골라 힘써 가르쳐 글의 이치를 통하게 하라
*세종실록 · 세종 5년 3월 17일*
같은 해 3월, 세종이 전지를 내립니다. 제생원 의녀 중에 나이 어리고 총명한 서너 명을 골라 힘써 가르쳐 글의 이치를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훈도관을 따로 두어 그 일을 맡겼습니다.
글을 읽을 줄 알아야 의서를 읽고, 의서를 읽어야 의원이 된다. 순서가 분명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걸렸나

실록에 의녀가 나오는 기사는 226건 남아 있습니다.
가장 많은 것은 중종 대인데, 86건 남았습니다. 처음 일곱 명을 세던 태종 대에서 백 년쯤 지난 뒤입니다.
100년이 걸렸습니다. 뽑는 데가 아니라 기르는 데 걸린 시간입니다.
다투는 동안 비어 있던 자리
조선의 기록이 남긴 것은 이것입니다.
정원을 정하는 일과, 사람을 길러 내는 일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조선은 그 둘을 갈라 놓고, 뽑기 전에 가르칠 것부터 정했습니다.
몇 명을 더 뽑느냐로 다투는 동안, 그 사람들을 무엇으로 어떻게 기를지는 따로 정해져야 합니다.
일곱에서 시작해 다섯을 셌다
일곱 명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다섯 명만 세었습니다.
숫자를 세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지금까지 숫자로 본 한국사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