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은 캔 사람에게 가지 않았다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오늘 낮 서른다섯 도 | 세종실록 · 1438년 11월 23일 |
| 대궐로 실려 갔다 | 문종실록 · 1451년 11월 11일 |
|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다 | 세종실록 · 1439년 9월 18일 |
| 군사에게도 주소서 | 세조실록 · 1456년 5월 26일 |
| 제사 얼음과 진상 얼음 | 성종실록 · 1488년 8월 9일 |
오늘 낮 서른다섯 도

藏氷, 本欲調爕愆伏
— 얼음을 저장하는 것은 본디 어긋난 기후를 고르게 하려는 것이다
*세종실록 · 1438년 11월 23일*
藏氷, 本欲調爕愆伏
— 얼음을 저장하는 것은 본디 어긋난 기후를 고르게 하려는 것이다
*세종실록 · 1438년 11월 23일*
처서가 지났는데 낮 최고 기온이 서른다섯 도까지 올랐습니다. 조선에도 여름 더위를 견디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겨울에 언 강을 잘라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에 꺼내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록을 따라가 보면 이상한 대목이 나옵니다. 얼음을 캔 사람과 얼음을 받은 사람이 달랐습니다.
한겨울 강에서 캤다

待其堅氷, 曠日留宿
— 얼음이 단단해지기를 기다리며 여러 날을 묵는다
*세종실록 · 1438년 11월 23일*
待其堅氷, 曠日留宿
— 얼음이 단단해지기를 기다리며 여러 날을 묵는다
*세종실록 · 1438년 11월 23일*
얼음은 한겨울 강에서 잘라 냈습니다. 이 일에 동원된 것은 백성이었습니다. 사간원이 올린 상소에 그 모습이 적혀 있습니다. 멀고 가까운 데서 온 백성이 양식을 지고 길에 나서, 얼음이 단단해지기를 기다리며 여러 날을 묵는다. 얼음이 덜 얼면 자를 수 없으니 얼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가 몸을 죈다

飢寒迫身, 其苦莫甚
— 굶주림과 추위가 몸을 죄니 그 괴로움이 심하다
*세종실록 · 1438년 11월 23일*
飢寒迫身, 其苦莫甚
— 굶주림과 추위가 몸을 죄니 그 괴로움이 심하다
*세종실록 · 1438년 11월 23일*
상소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굶주림과 추위가 몸을 죄니 그 괴로움이 심하다. 그러고는 이렇게 묻습니다. 무릇 얼음을 저장하는 것은 본디 어긋난 기후를 고르게 하여 화기를 부르려는 것인데, 먼저 백성으로 하여금 혹독한 추위에 원망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옳은가. 나눠 주는 양을 줄이고 창고 칸수도 줄여 백성을 부리지 말자고 청했습니다.
대궐로 실려 갔다

凡百司及見任堂上官之家
— 모든 관사와 현직 당상관의 집
*문종실록 · 1451년 11월 11일*
凡百司及見任堂上官之家
— 모든 관사와 현직 당상관의 집
*문종실록 · 1451년 11월 11일*
그렇게 캔 얼음은 여름에 나눠 주었습니다. 이것을 반빙이라고 합니다. 받는 곳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궁중에서 쓰는 몫이 있고, 각 관사가 있고, 현직 당상관의 집이 있었습니다. 당상관은 정삼품 위쪽의 높은 벼슬입니다. 캔 사람은 강가에 있었고, 받은 사람은 도성 안에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다

古者卿大夫以上, 雖皆用氷, 然不過老病喪浴而已
— 옛날에는 경대부 이상이 모두 얼음을 썼으나, 늙고 병들거나 상례에 목욕할 때에 지나지 않았다
*세종실록 · 1439년 9월 18일*
古者卿大夫以上, 雖皆用氷, 然不過老病喪浴而已
— 옛날에는 경대부 이상이 모두 얼음을 썼으나, 늙고 병들거나 상례에 목욕할 때에 지나지 않았다
*세종실록 · 1439년 9월 18일*
이듬해 사간원이 다시 상소를 올립니다. 옛날에는 경대부 이상이 모두 얼음을 썼으나, 늙고 병들었을 때나 상례에 목욕할 때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안을 냅니다. 얼음 저장할 때 부리는 사람과 잡물을 절반으로 줄이자.
이품 이상도 빼자

二品以上則老病喪浴外, 勿令頒氷
— 2품 이상은 늙고 병들거나 상례에 목욕하는 것 말고는 얼음을 나눠 주지 마소서
*세종실록 · 1439년 9월 18일*
二品以上則老病喪浴外, 勿令頒氷
— 2품 이상은 늙고 병들거나 상례에 목욕하는 것 말고는 얼음을 나눠 주지 마소서
*세종실록 · 1439년 9월 18일*
그리고 이렇게 청합니다. 궁중과 종학, 의정부와 육조, 대간과 왕실 종친에게는 나눠 주되, 이품 이상은 늙고 병들거나 상례에 목욕하는 것 말고는 얼음을 나눠 주지 마소서. 이품이면 판서급입니다. 그 높은 자리도 평소에는 빼자는 것이었습니다. 얼음이 그만큼 귀했고, 그만큼 백성의 겨울을 갈아 만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러난 신하는 못 받았다
前銜堂上官, 皆是老病舊臣, 獨未及焉
— 전직 당상관은 다 늙고 병든 옛 신하인데 홀로 미치지 못합니다
*문종실록 · 1451년 11월 11일*
前銜堂上官, 皆是老病舊臣, 獨未及焉
— 전직 당상관은 다 늙고 병든 옛 신하인데 홀로 미치지 못합니다
*문종실록 · 1451년 11월 11일*
십이 년 뒤에는 반대쪽에서 청이 올라옵니다. 집현전 부제학 신석조가 아룁니다. 반빙은 왕정에서 중히 여기는 바인데, 모든 관사와 현직 당상관의 집에는 상제에 이르기까지 두루 쓰는데, 전직 당상관은 다 늙고 병든 옛 신하인데 홀로 미치지 못합니다. 특별히 명하여 나눠 주시어 노인을 우대하는 은혜를 보이소서.
비용이 어떨지 모르겠다
實是美法。 但未知用度如何耳
— 참으로 아름다운 법이다. 다만 비용이 어떨지 모르겠다
*문종실록 · 1451년 11월 11일*
實是美法。 但未知用度如何耳
— 참으로 아름다운 법이다. 다만 비용이 어떨지 모르겠다
*문종실록 · 1451년 11월 11일*
임금의 답이 짧습니다. 전직 당상관에게 얼음을 나눠 주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법이다. 다만 비용이 어떨지 모르겠다. 좋은 뜻인 줄은 알지만 여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받을 사람을 늘리려면 캘 사람도 늘어난다는 것을, 임금도 신하도 알고 있었습니다.
군사에게도 주소서
夏月頒氷時, 入直軍士亦賜氷
— 여름에 얼음을 나눌 때 입직 군사에게도 얼음을 내리소서
*세조실록 · 1456년 5월 26일*
夏月頒氷時, 入直軍士亦賜氷
— 여름에 얼음을 나눌 때 입직 군사에게도 얼음을 내리소서
*세조실록 · 1456년 5월 26일*
또 오 년 뒤에는 시강관 양성지가 이렇게 청합니다. 여름에 얼음을 나눌 때 입직 군사에게도 얼음을 내리소서. 입직 군사는 궁궐을 지키느라 그 더위 속에 서 있던 사람들입니다. 나눠 주는 명단에 그들은 없었던 것입니다. 청이 나왔다는 것은 그때까지 없었다는 뜻입니다.
제사 얼음과 진상 얼음
祭享氷藏於東氷庫, 供上氷藏於西氷庫
— 제향에 쓸 얼음은 동빙고에, 진상할 얼음은 서빙고에 저장한다
*성종실록 · 1488년 8월 9일*
祭享氷藏於東氷庫, 供上氷藏於西氷庫
— 제향에 쓸 얼음은 동빙고에, 진상할 얼음은 서빙고에 저장한다
*성종실록 · 1488년 8월 9일*
얼음 창고는 둘이었습니다. 제사에 쓸 얼음은 동빙고에, 임금께 올릴 얼음은 서빙고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서빙고의 얼음은 여러 관사에 나눠 줄 것과 섞여 있었습니다. 대사간 권중린이 그것을 나누자고 청합니다. 임금은 옮기는 데 폐단이 있으니 서빙고 안에서 따로 저장하라고 답했습니다. 얼음을 어디에 둘지까지 조정에서 논의한 것입니다.
남은 문장
기록을 이어 보면 이렇습니다. 얼음은 한겨울에 백성이 강에서 잘라 냈고, 여름에 관청과 높은 벼슬아치의 집으로 갔습니다. 이품 이상도 빼자는 상소가 올라왔고, 물러난 신하도 달라고 청했고, 궁궐을 지키던 군사에게도 주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받는 사람의 명단은 이렇게 여러 번 다시 적혔습니다. 그런데 캐는 사람의 명단이 바뀌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무엇을 나눌지 정하는 일과 그것을 누가 만드는지 묻는 일은, 같은 자리에서 함께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출처
세종실록 · 문종실록을 참고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