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을 주식으로…조선은 쌀·콩·명주로 줬다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무엇으로 받나 | 태조실록 · 1398년 1월 14일 |
| 못 나눠 준 사람 | 태조실록 · 1397년 12월 26일 |
| 군량을 꿔다 | 태종실록 · 1409년 1월 29일 |
| 깎을 때의 숫자 | 태종실록 · 1409년 5월 30일 |
| 법은 못 고친다 | 태종실록 · 1411년 5월 6일 |
| 남은 문장 | 태조실록 · 1392년 12월 16일 |
무엇으로 받나

성과급을 현금이 아니라 주식으로 준다는 소식이 화제입니다.
보수를 무엇으로 주느냐는 오래된 문제였습니다. 조선의 관리들도 돈으로 받지 않았거든요.
그럼 무엇을 받았을까요. 기록에 그 목록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쌀과 콩과 명주

1398년 정월, 조정이 호조 창고를 엽니다. 쌀과 콩 4만 6천 석, 그리고 명주 180필.
이걸 관리들 봉급에 보탰습니다. 쌀은 밥이고, 콩은 반찬이자 말 먹이였고, 명주는 그대로 돈처럼 쓰였습니다.
곡식과 옷감으로 받는 월급. 그게 조선의 녹봉이었습니다.
못 나눠 준 사람

받는 일이 순조로웠던 것도 아닙니다.
1397년 섣달, 창고를 맡은 관원 윤회와 이백공이 감옥에 갇힙니다. 죄목은 이렇습니다. 녹봉을 나눌 때 여관이 받지 못했다.
궁중에서 일하던 여성 관리들에게 몫이 돌아가지 않았던 겁니다. 담당자는 그 길로 옥에 갇혔고, 나중에 그들의 녹봉을 거두어 다른 데 썼습니다.
월급을 제때 주는 일은 그 시절에도 사람을 가두는 문제였습니다.
군량을 꿔다

1409년, 태종이 문제를 짚습니다.
해마다 녹봉이 모자라서 군자, 그러니까 전쟁에 쓸 군량에서 꾸어다 준다. 임금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것은 녹을 무겁게 여기는 도리가 아니다.
비상용으로 쌓아 둔 것을 헐어 월급을 주고 있었던 셈이죠. 임금이 내린 처방은 녹전을 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봉급으로 나갈 몫의 땅을 더 잡아 두라는 뜻입니다.
깎을 때의 숫자

같은 해 오월, 의정부가 감액안을 올립니다. 숫자가 구체적입니다.
쌀과 콩은 1품에서 6품까지 각각 2석, 7품 이하는 1석을 깎는다. 베는 8품 이하에서 1필을 깎는다.
깎는 것도 등급마다 다르게 정해 두었습니다. 그만큼 봉급 체계가 촘촘했다는 뜻이고, 동시에 그만큼 자주 깎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법은 못 고친다

여기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1411년, 임금이 말합니다. 대장과 대부는 수시로 부역에 나가는데 동반 9품과 견주면 수고가 고르지 않다. 녹과를 깎지 말고 전과 같이 주라.
신하들이 답합니다. 녹과는 동반과 서반이 같은 등급이고 1과부터 18과까지 정해진 법이 있습니다. 서반 9품만 고치면 동반 9품도 고쳐야 하니, 고치기 어렵습니다.
제도는 못 바꾼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럼 이름을 바꾸자
그러자 신하들이 방법을 냅니다. 부역의 수고가 있으니, 하사미라고 이름을 붙여 주면 어떻겠습니까.
임금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 뒤로 번을 마칠 때마다 쌀 한 섬씩을 따로 주었습니다.
봉급 액수는 법이라 못 건드리고, 대신 다른 이름의 항목을 하나 만든 겁니다. 육백 년 전에도 보수를 손볼 때는 이름부터 바꿨습니다.
남은 문장
그 뒤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1485년 흉년에는 조정 신하의 녹봉을 이미 줄였다는 말이 나오고, 1881년에는 군졸들이 제때 급료를 받지 못했다는 기록이 남습니다. 그 이듬해에 임오군란이 일어납니다.
조선을 세운 조준이 나라의 틀을 논하며 적어 둔 문장이 있습니다. 녹봉이 두터워야 염치가 행해지고, 창고가 차야 나라 살림이 넉넉하다.
무엇으로 주느냐보다 먼저인 것이 있었습니다. 제때, 정한 만큼 주는 일입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무엇으로 받나
성과급을 현금이 아니라 주식으로 준다는 소식이 화제입니다.
쌀과 콩과 명주,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398년 정월, 조정이 호조 창고를 엽니다. 쌀과 콩 4만 6천 석, 그리고 명주 180필.
못 나눠 준 사람, 숫자로는 어떻게 되나요?
1397년 섣달, 창고를 맡은 관원 윤회와 이백공이 감옥에 갇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