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나가 달라고 하지 않았다 — 1948년 88대 3」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나가 달라는 안이 있었다 | 제헌 제1회 제87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0월 13일 |
| 유엔은 구십 일이라고 했다 | 제헌 제1회 제101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11일 |
| 최단기간 안에 |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
| 그래도 떠났다 | 제헌 제4회 제9차 국회본회의 · 1949년 7월 30일 |
나가 달라는 안이 있었다

「외군철퇴 요청에 관한 동의안」이 회부되었읍니다
— 1948년 10월 13일, 의원 47인이 낸 동의안
*제헌 제1회 제87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0월 13일*
「외군철퇴 요청에 관한 동의안」이 회부되었읍니다
— 1948년 10월 13일, 의원 47인이 낸 동의안
*제헌 제1회 제87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0월 13일*
대한민국 첫 국회는 미군한테 나가 달라고 했을까요, 더 있어 달라고 했을까요. 한 달 사이에 둘 다 했습니다.
1948년 10월 13일, 제헌국회 본회의입니다. 의사국장이 안건 하나를 알립니다. 의원 47명이 외국 군대를 내보내 달라는 안을 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름은 외군철퇴 요청에 관한 동의안. 철퇴는 물러난다는 뜻이고, 동의안은 의원들이 회의 중에 직접 내놓는 안건을 말합니다.
정부가 선 지 두 달째였습니다. 갓 생긴 나라의 국회에 이런 안건이 올라온 겁니다.
말만 들어 가지고

외군철퇴라는 말만 들어 가지고 여기서 흥분되어서 말할 것이 없읍니다
— 내용도 모른 채 제목만으로 다투었다
*제헌 제1회 제87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0월 13일*
외군철퇴라는 말만 들어 가지고 여기서 흥분되어서 말할 것이 없읍니다
— 내용도 모른 채 제목만으로 다투었다
*제헌 제1회 제87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0월 13일*
그런데 회의장은 안건 내용이 아니라 제목을 놓고 먼저 갈라집니다.
한 의원이 말합니다. 이 동의 내용이 도대체 어떠한 내용인지 들어 보기 전에는 외군철퇴라는 말만 들어 가지고 여기서 흥분되어서 말할 것이 없읍니다.
안을 낸 의원도 같은 걸 짚었습니다. 제목만 보고 여러분이 다소 흥분하신 것 같다고요.
그때까지 아무도 안의 내용을 읽어 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보류

시방은 이 안을 보류하기로 되었는데
— 재석 133인 가운데 가 68, 부 10으로 보류가 가결되었다
*제헌 제1회 제87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0월 13일*
시방은 이 안을 보류하기로 되었는데
— 재석 133인 가운데 가 68, 부 10으로 보류가 가결되었다
*제헌 제1회 제87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0월 13일*
결국 나온 결론은 찬성도 반대도 아니었습니다. 안을 인쇄해서 의원들한테 돌릴 때까지 표결은 미루자는 것이었습니다.
의장이 선포합니다. 만일 보류하자는 동의라면 성립입니다. 그러면 보류동의 성립됐어요.
손을 들어 세어 보니, 자리에 있던 133명 가운데 찬성 68명에 반대 10명이었습니다.
찬성과 반대를 합쳐도 78명입니다. 나머지 55명은 어느 쪽으로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나가 달라는 안은 이렇게 표결 한 번 못 해 보고 뒤로 밀렸습니다.
유엔은 구십 일이라고 했다

정부가 국군을 조직한 후에 가능하면 90일 이내에 철병을 한다
— 유엔 결의를 근거로 든 의원 질의
*제헌 제1회 제101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11일*
정부가 국군을 조직한 후에 가능하면 90일 이내에 철병을 한다
— 유엔 결의를 근거로 든 의원 질의
*제헌 제1회 제101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11일*
한 달 뒤인 11월 11일, 한 의원이 근거를 하나 들고 나옵니다.
정부가 국군을 조직한 후에 가능하면 90일 이내에 철병을 한다고 하는 이러한 유엔의 결의가 있으니.
우리 군대만 갖추면 90일 안에 나간다. 그 약속이 국제기구 문서에 날짜까지 붙어 적혀 있다는 겁니다.
나가라고 요구할 근거는 이미 있었던 셈입니다.
최단기간 안에

아마 최단기간 안에 철병이 완료될 것으로 보이고 있읍니다
— 국방부장관이 본회의에서 한 보고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아마 최단기간 안에 철병이 완료될 것으로 보이고 있읍니다
— 국방부장관이 본회의에서 한 보고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11월 20일, 국방부장관이 본회의에 나와 상황을 설명합니다.
해방 이래 3년 동안 진주해 있던 미군의 철병 문제는 거족적으로 최근에 이르러서 관심이 크게 되었읍니다. 그네는 지금의 형태로 보아서는 아마 최단기간 안에 철병이 완료될 것으로 보이고 있읍니다.
거족적이라는 건 온 국민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미군이 들어온 게 1945년 9월이니, 이때가 꼭 3년째였습니다.
요구할 것도 없이 이미 짐을 싸는 중이라는 보고였습니다.
정비될 때까지

대한민국의 방비 태세가 정비될 때까지 미 주둔군의 남한 주둔이 필요를 인정함
— 미군주둔에 관한 결의안 본문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대한민국의 방비 태세가 정비될 때까지 미 주둔군의 남한 주둔이 필요를 인정함
— 미군주둔에 관한 결의안 본문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그런데 바로 그날 올라온 안건 이름이 이렇습니다. 미군주둔에 관한 결의안. 한 달 전과 정반대 방향이었습니다.
제안한 의원이 본문을 읽습니다. 현하 국내정세에 감하여 대한민국의 방비 태세가 정비될 때까지 미 주둔군의 남한 주둔이 필요를 인정함.
지금 형편으로 보아 우리가 지킬 준비를 갖출 때까지는 미군이 있어야겠다는 뜻입니다.
결의안은 이 한 줄이 전부였습니다.
반영을 가져올 것이냐
미군을 계속해서 여기에 주둔하여 있어 달라는 이러한 결의를
— 국제연합 총회에 어떻게 비치겠느냐고 물었다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미군을 계속해서 여기에 주둔하여 있어 달라는 이러한 결의를
— 국제연합 총회에 어떻게 비치겠느냐고 물었다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반대하는 목소리도 그대로 남았습니다. 한 의원이 이렇게 묻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대표는 국제연합 총회에 가서 승인을 해 달라고 하는 이때에, 자주 독립국가인 이 국회가 미군을 계속해서 여기에 주둔하여 있어 달라는 이러한 결의를 한다면 그것이 총회 개최 중에 어떠한 반영을 가져올 것이냐.
한쪽에선 어엿한 독립국으로 인정해 달라 하고, 다른 쪽에선 남의 군대를 붙잡는 셈이라는 겁니다.
자주능력이 없다는 것을
우리의 자주능력이 없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발표해 가지고
— 근본 정신에는 찬성하지만 표현이 걱정된다고 했다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우리의 자주능력이 없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발표해 가지고
— 근본 정신에는 찬성하지만 표현이 걱정된다고 했다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또 다른 의원의 말입니다. 뜻에는 반대할 사람이 없고 자기도 찬성한다, 다만 방법과 표현이 걸린다고 먼저 밝힙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덮어놓고 계속적으로 외군을 주둔해 달라고 요구하는 데 대해서는 우리의 자주능력이 없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발표해 가지고, 도리혀 우리의 소기의 목적이 방해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된다.
우리 힘으로는 못 지킨다고 온 세계에 광고하는 꼴이 된다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정안도 나왔습니다. 있어 달라고 붙잡는 대신, 유엔이 정한 대로 하는 게 우리 책임이라고 고쳐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88대 3
재석의원 113인, 가에 88, 부에 3
—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재석의원 113인, 가에 88, 부에 3
—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제헌 제1회 제109차 국회본회의 · 1948년 11월 20일*
먼저 토론을 그만하자는 동의부터 표결에 부칩니다. 116명 가운데 찬성 86명, 반대 12명으로 가결됐습니다. 이어서 결의안 자체를 손 들어 세었습니다. 투표용지에 적는 게 아니라, 누가 어느 쪽인지 다 보이는 자리에서였습니다.
의장이 선포합니다. 재석의원 113인, 가에 88, 부에 3, 이 건은 원안대로 통과되었읍니다.
한 달 전에는 나가 달라는 안이 표결도 못 하고 밀렸고, 한 달 뒤에는 있어 달라는 안이 88대 3으로 통과됐습니다. 같은 회의장,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떠났다
미군은 완전히 남한에서 철병하였으니
— 1949년 6월 철수가 끝났다
*제헌 제4회 제9차 국회본회의 · 1949년 7월 30일*
미군은 완전히 남한에서 철병하였으니
— 1949년 6월 철수가 끝났다
*제헌 제4회 제9차 국회본회의 · 1949년 7월 30일*
사흘 뒤 한 의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미군을 계속해서 주둔해 달라고 결의했다고 해서 미군이 주둔하는 것도 아니겠고, 또 우리가 그런 성명서를 냈다고 해서 미군이 철병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결의문 한 장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말이 맞았습니다.
이듬해 2월에는 90일 안에 나간다던 그 조항이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는 발언이 나왔고, 그해 6월에 철수가 끝납니다. 7월 30일 속기록에는 이렇게 적혔습니다. 미군은 완전히 남한에서 철병하였으니.
첫 국회는 나가 달라고 하지 않았고, 군대는 그것과 상관없이 떠났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흐를지, 기록은 아직 말하지 않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