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 백 일…1426년, 관청 여종이 가장 먼저였다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어제 나온 숫자 | 세종실록 · 1426년 4월 17일 |
| 이레 뒤엔 일을 시켰다 |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
| 남편에게도 서른 날 | 세종실록 · 1434년 4월 26일 |
어제 나온 숫자

給暇百日, 以爲恒式
— 백 일의 휴가를 주는 것을 늘 지키는 법식으로 삼는다
*세종실록 · 1426년 4월 17일*
給暇百日, 以爲恒式
— 백 일의 휴가를 주는 것을 늘 지키는 법식으로 삼는다
*세종실록 · 1426년 4월 17일*
아이가 늘었다는 통계가 어제 나왔습니다. 2025년 합계출산율 0.80명, 이 년째 늘었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고 쉬는 날을 처음 법으로 정한 것은 육백 년 전입니다. 그리고 그 백 일은, 그 시절 가장 아래에 있던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주어졌습니다.
이레 뒤엔 일을 시켰다

必令産兒七日後立役
— 반드시 아이를 낳고 이레 뒤에는 일을 시켰다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必令産兒七日後立役
— 반드시 아이를 낳고 이레 뒤에는 일을 시켰다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그 전에는 이레였습니다.
관청에 매인 여종이 아이를 낳으면, 이레 뒤에는 반드시 일터로 나오게 했습니다. 낳고 일주일입니다.
물을 긷고 밥을 짓고 옷을 빨던 사람들입니다. 그 일이 이레 뒤에 다시 시작됐습니다.
왜 하필 이레였는지는 기록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고치자고 한 이유는 적혀 있습니다.
아이를 두고 나가야 했다

矜其棄兒立役, 以傷小兒也
— 아이를 두고 일하러 나가 어린아이가 상하는 것을 딱하게 여겼다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矜其棄兒立役, 以傷小兒也
— 아이를 두고 일하러 나가 어린아이가 상하는 것을 딱하게 여겼다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아이를 두고 일하러 나가면 그 아이가 상한다. 그것을 딱하게 여겼다.
임금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미가 관청에서 일하는 동안 갓난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나라가 모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일곱 날 된 아기를 두고 나가야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아기에게 일어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 법을 고친 이유로 적혔습니다.
백 일로 늘렸다

京外公處婢子産兒後, 給暇百日
— 서울과 지방 관청의 여종이 아이를 낳은 뒤에는 백 일의 휴가를 준다
*세종실록 · 1426년 4월 17일*
京外公處婢子産兒後, 給暇百日
— 서울과 지방 관청의 여종이 아이를 낳은 뒤에는 백 일의 휴가를 준다
*세종실록 · 1426년 4월 17일*
1426년, 형조에 명이 내려갑니다.
서울과 지방 관청의 여종이 아이를 낳은 뒤에는 백 일을 쉬게 하라. 그리고 이것을 늘 지키는 법식으로 삼으라.
이레가 백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未及其家而産者, 或有之
— 집에 미처 이르기 전에 낳는 자가 간혹 있다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未及其家而産者, 或有之
— 집에 미처 이르기 전에 낳는 자가 간혹 있다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그런데 사 년 뒤, 임금이 다시 이 이야기를 꺼냅니다.
해산할 때가 되었는데도 일을 시켜 몸이 고단하면, 집에 미처 이르기 전에 낳는 사람이 간혹 있다고요.
쉬는 날을 뒤로 백 일 주었지만, 낳기 전은 그대로였던 것입니다.
낳을 달에도

若臨産月, 除役一朔
— 해산할 달에는 한 달 동안 사역을 면제하면 어떻겠는가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若臨産月, 除役一朔
— 해산할 달에는 한 달 동안 사역을 면제하면 어떻겠는가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그래서 임금이 묻습니다. 해산할 달에는 한 달을 아예 일에서 빼 주면 어떻겠는가.
앞으로 한 달, 뒤로 백 일. 합치면 넉 달이 넘습니다.
낳은 뒤만 쉬게 해서는 낳는 일 자체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사 년 만에 알아차린 것입니다.
속인다 한들
彼雖欺罔, 豈過一月乎
— 저들이 비록 속인다 한들, 어찌 한 달을 넘기겠는가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彼雖欺罔, 豈過一月乎
— 저들이 비록 속인다 한들, 어찌 한 달을 넘기겠는가
*세종실록 · 1430년 10월 19일*
그리고 이 말이 이어집니다.
저들이 비록 속인다 한들, 어찌 한 달을 넘기겠는가.
거짓으로 쉬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느냐. 새 제도를 만들 때면 반드시 나오는 말입니다.
그 말이 나오기 전에 임금이 먼저 답한 것입니다. 속여 봐야 한 달이다. 그러니 그 한 달이 아까워 이 법을 세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남편에게도 서른 날
其夫滿三十日後役使
— 그 남편은 서른 날을 채운 뒤에 부린다
*세종실록 · 1434년 4월 26일*
其夫滿三十日後役使
— 그 남편은 서른 날을 채운 뒤에 부린다
*세종실록 · 1434년 4월 26일*
1434년에는 남편 차례가 옵니다.
남편에게는 휴가를 주지 않고 그대로 부리니 아내를 돌보지 못한다. 부부가 서로 구완한다는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이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일까지 생긴다.
그래서 사역하는 사람의 아내가 아이를 낳으면, 남편은 서른 날을 채운 뒤에 부리라고 했습니다.
가장 아래에서 시작했다
以爲恒式
— 늘 지키는 법식으로 삼는다
*세종실록 · 1426년 4월 17일*
以爲恒式
— 늘 지키는 법식으로 삼는다
*세종실록 · 1426년 4월 17일*
이 백 일은 벼슬아치의 아내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관청에 매인 여종, 그 시절 가장 아래에 있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낳고 이레 만에 나오게 하던 것을 백 일로 늘리고, 낳을 달을 더 얹고, 남편에게 서른 날을 붙이는 데 팔 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실록은 그 여덟 해를 세 번의 명령으로 적어 두었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