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적힌 약속은 언제까지 지켜지나 — 1882년 조미조약의 한 줄」
근거가 된 기록
| 대목 | 출전 |
|---|---|
| 반드시 서로 돕는다 | 고종실록 · 1882년 4월 6일 · 조미조약 제1관 |
| 같은 문장을 여섯 번 더 | 고종실록 · 1883년 10월 27일 · 조영조약 제1관 |
| 처음 써 보다 | 고종실록 · 1885년 4월 7일 |
| 끝내 이루지 못했다 | 매천야록 · 1894년 |
| 먼저 떠난다고 말했다 | 속음청사 · 1905년 12월 8일 |
| 공관을 거두다 | 속음청사 · 1905년 12월 16일 |
| 각 공관이 거두어지다 | 속음청사 · 1905년 12월 30일 |
반드시 서로 돕는다

若他國有何不公輕藐之事, 一經照知, 必須相助
— 다른 나라가 공평하지 못하고 업신여기는 일을 하면 알려 오는 대로 반드시 서로 돕는다
*고종실록 · 1882년 4월 6일 · 조미조약 제1관*
若他國有何不公輕藐之事, 一經照知, 必須相助
— 다른 나라가 공평하지 못하고 업신여기는 일을 하면 알려 오는 대로 반드시 서로 돕는다
*고종실록 · 1882년 4월 6일 · 조미조약 제1관*
종이에 적어 둔 약속은 언제까지 지켜질까요. 조선이 그걸 시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1882년 4월 6일, 인천 제물포에서 조선과 미국이 조약을 맺습니다. 조선이 서양 나라와 맺은 첫 조약이었습니다.
열네 개 조항 가운데 첫 번째에 이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만약 다른 나라가 공평하지 못하고 업신여기는 일을 하면, 알려 오는 대로 반드시 서로 도와야 한다.
누가 우리를 함부로 대하면 서로 돕는다. 첫 조항, 첫 약속이었습니다.
중간에서 잘 조처한다

從中善爲調處, 以示友誼關切
— 중간에서 잘 조처하여 우의가 두터움을 보인다
*고종실록 · 1882년 4월 6일 · 조미조약 제1관*
從中善爲調處, 以示友誼關切
— 중간에서 잘 조처하여 우의가 두터움을 보인다
*고종실록 · 1882년 4월 6일 · 조미조약 제1관*
문장은 바로 이어집니다. 중간에서 잘 조처하여 우의가 두터움을 보인다.
뒷날 이 대목을 거중조정이라 불렀습니다. 말은 어려운데 뜻은 간단합니다. 두 나라가 다투면 제삼자가 사이에 끼어들어 풀어 준다는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갈 게 있습니다. 군대를 보낸다는 말이 없습니다. 함께 싸운다는 말도 없습니다.
반드시 돕는다는 말과 중간에서 잘 조처한다는 말이 나란히 있을 뿐이었습니다.
영원히 화평하고 우호한다

嗣後大朝鮮國君主、 大美國伯理璽天德, 竝其人民
— 이 뒤로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대통령, 그리고 그 인민은
*고종실록 · 1882년 4월 6일 · 조미조약 제1관*
嗣後大朝鮮國君主、 大美國伯理璽天德, 竝其人民
— 이 뒤로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대통령, 그리고 그 인민은
*고종실록 · 1882년 4월 6일 · 조미조약 제1관*
제1관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뒤로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대통령, 그리고 그 인민은 각각 다 영원히 화평하고 우호한다.
그런데 이 문장은 조약을 맺기 한 달 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만들어진 곳은 조선이 아니라 청나라 천진이었습니다.
그곳에 가 있던 조선 관리의 일기에 초안이 그대로 적혀 있는데, 글자 몇 개만 빼면 실록에 실린 조약문과 같습니다.
조약문은 한문본과 영문본으로 세 벌씩 만들어 나눠 가졌습니다.
같은 문장을 여섯 번 더

應卽設法, 從中善爲調處
— 곧 방법을 마련하여 중간에서 잘 조처한다
*고종실록 · 1883년 10월 27일 · 조영조약 제1관*
應卽設法, 從中善爲調處
— 곧 방법을 마련하여 중간에서 잘 조처한다
*고종실록 · 1883년 10월 27일 · 조영조약 제1관*
이 문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영국, 독일과 맺은 조약의 첫 조항에도 똑같은 구절이 들어갑니다. 저 나라가 뒷날 다른 나라와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이 나라는 곧 방법을 마련하여 중간에서 잘 조처한다.
그 뒤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와 맺은 조약에도, 대한제국이 청과 맺은 조약에도 같은 조항이 실립니다. 실록에서 이 구절이 나오는 조약은 모두 일곱입니다.
조선은 같은 약속을 일곱 번 받아 적어 두었습니다. 일곱이면 든든했을까요.
처음 써 보다

敝邦義不當默視, 且聲明於同盟各國
— 우리나라는 의리상 잠자코 볼 수 없으며 동맹 각국에 성명하겠다
*고종실록 · 1885년 4월 7일*
敝邦義不當默視, 且聲明於同盟各國
— 우리나라는 의리상 잠자코 볼 수 없으며 동맹 각국에 성명하겠다
*고종실록 · 1885년 4월 7일*
이 조항을 처음 꺼내 든 건 1885년이었습니다. 영국 군함이 남해의 거문도를 차지하자 조선이 영국 부영사에게 글을 보냅니다.
이 섬은 우리나라의 땅이니 다른 나라가 점유해서는 안 된다. 만국공법에 본래 이런 이치가 없다. 우리나라는 의리상 잠자코 볼 수 없으며, 또 동맹 각국에 성명하여 그 공론을 듣겠다.
동맹 각국이란 조약을 맺은 나라들입니다. 바로 그 한 줄을 함께 적어 둔 나라들이었습니다.
영국 군함은 그러고도 2년을 더 있다 나갔습니다.
끝내 이루지 못했다

各國調處 卒無成議
— 각국의 조정은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매천야록 · 1894년*
各國調處 卒無成議
— 각국의 조정은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매천야록 · 1894년*
1894년 여름, 조선 땅에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가 함께 들어와 있었습니다.
아산에 내린 청나라 제독이 본국으로 보낸 전보가 매천야록에 실려 있습니다. 왜가 날로 창궐하고 한국은 급히 원조를 바라는데, 각국의 조정은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조정. 사이에 들어 풀어 준다는 그 말이 여기 다시 나옵니다. 이번에는 안 됐다는 문장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해 조선 궁궐에 들어온 것은 사이를 풀어 주러 온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떠난다고 말했다
美公使先爲聲言撤歸, 他使亦將次第歸國云
— 미국 공사가 먼저 철수해 돌아가겠다고 말했고 다른 공사들도 차례로 귀국하리라 한다
*속음청사 · 1905년 12월 8일*
美公使先爲聲言撤歸, 他使亦將次第歸國云
— 미국 공사가 먼저 철수해 돌아가겠다고 말했고 다른 공사들도 차례로 귀국하리라 한다
*속음청사 · 1905년 12월 8일*
1905년 11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기는 조약이 맺어집니다. 남의 나라와 직접 말을 섞을 권리를 잃은 겁니다.
그 무렵의 일기가 남아 있습니다. 지방에 내려가 있던 한 관리가 서울에서 오는 신문을 받아 날마다 적은 것입니다.
12월 8일 자에 이렇게 적혔습니다. 미국 공사가 먼저 철수해 돌아가겠다고 말했고, 다른 공사들도 차례로 귀국하리라 한다.
23년 전 반드시 돕겠다고 함께 적은 나라 가운데, 짐을 가장 먼저 싼 쪽이 그 나라였습니다.
공관을 거두다
已被本國訓令撤館回國, 只留領事護民
— 본국 훈령을 받아 공관을 거두고 귀국했으며 영사만 남겨 교민을 보호한다
*속음청사 · 1905년 12월 16일*
已被本國訓令撤館回國, 只留領事護民
— 본국 훈령을 받아 공관을 거두고 귀국했으며 영사만 남겨 교민을 보호한다
*속음청사 · 1905년 12월 16일*
여드레 뒤 일기는 결과를 적었습니다.
미국 공사와 독일 공사는 이미 본국 훈령을 받아 공관을 거두고 귀국했으며, 영사만 남겨 교민을 보호한다. 나머지 공사들도 휴가를 얻어 귀국했다.
공사는 나라를 대표해 와 있는 외교관이고, 영사는 자기 나라 사람 일을 봐 주는 사람입니다. 나라 대 나라의 창구는 닫고 교민 창구만 남긴 겁니다.
같은 대목에 각국 공사들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도 적혀 있습니다. 각국 공사는 다만 곁에서 볼 뿐이었다.
공인인가 사인인가
美使以公函, 問今番條約, 公認耶私認耶
— 미국 공사가 공문으로 이번 조약이 공인인지 사인인지 물었다
*속음청사 · 1905년 12월 16일*
美使以公函, 問今番條約, 公認耶私認耶
— 미국 공사가 공문으로 이번 조약이 공인인지 사인인지 물었다
*속음청사 · 1905년 12월 16일*
떠나기 전에 물어 온 게 하나 있었습니다.
미국 공사가 공문으로, 이번 조약이 공인인지 사인인지 물었다. 곧 회시하겠다고 한다.
나라가 정식으로 인정한 것이냐, 몇 사람이 사사로이 인정한 것이냐. 그 조약이 진짜냐고 물은 겁니다.
조약이 어떤 것인지 묻는 공문과, 공관을 거두라는 지시가 같은 날짜 기록에 나란히 있습니다.
물음은 남았고, 답은 기록에 없습니다.
각 공관이 거두어지다
我國各公館撤還
— 우리나라의 각 공관이 거두어져 돌아왔다
*속음청사 · 1905년 12월 30일*
我國各公館撤還
— 우리나라의 각 공관이 거두어져 돌아왔다
*속음청사 · 1905년 12월 30일*
그 무렵 스스로 목숨을 끊은 민영환의 옷깃에서 유서 두 통이 나왔습니다. 한 통은 국민에게, 한 통은 각국 공관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공관에 보낸 글이 그 일기에 옮겨져 있습니다. 귀 공사 각하는 마땅히 천하의 공의를 무겁게 여겨, 돌아가 귀 정부와 인민에게 알려 우리 인민의 자유 독립을 도와 달라.
그해 12월 그믐, 일기의 마지막 줄은 이렇습니다. 통감부 관제가 발포되었고, 우리나라의 각 공관이 거두어져 돌아왔다. 이제는 조선이 남의 나라에 두었던 공관도 문을 닫았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서로 돕는다는 한 줄은 23년 동안 종이 위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흐를지, 기록은 아직 말하지 않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