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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2026년 08월 28일·6분 분량·원자료 직접 집계

오늘 2시 대피 훈련…적이 나타나면 2거, 국경 넘으면 4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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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오후 두 시성종실록 · 1478년 2월 16일
세다가 틀리다단종실록 · 1454년 11월 8일
가르치지 않았다비변사등록 · 1729년 4월 14일
불이 끊기면숙종실록 · 1703년 5월 18일 · 대전통편 봉수조
목을 벨 것인가숙종실록 · 1703년 5월 18일
예순다섯의 봉군세조실록 · 1456년 11월 14일

오후 두 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오늘 오후 두 시, 전국에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소리 하나로 「지금 위험하다」를 알리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오백 년 전 조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갔습니다. 위험이 얼마나 큰지까지 신호에 담았거든요.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불을 몇 개 피우느냐.

하나에서 다섯까지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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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時一炬 賊現則二炬 近境則三炬

— 평시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가까워지면 셋

*성종실록 · 1478년 2월 16일*

平時一炬 賊現則二炬 近境則三炬

— 평시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가까워지면 셋

*성종실록 · 1478년 2월 16일*

경국대전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불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국경 가까이 오면 셋. 국경을 넘으면 넷. 그리고 맞붙어 싸우기 시작하면 다섯.

숫자만 세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말도, 글도 필요 없었습니다.

왜 다섯이었나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接戰則五炬

— 맞붙어 싸우면 다섯

*성종실록 · 1478년 2월 16일*

接戰則五炬

— 맞붙어 싸우면 다섯

*성종실록 · 1478년 2월 16일*

산꼭대기에서 산꼭대기로 불을 넘기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신호는 짧고 분명해야 했습니다.

「적이 왔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배 한 척이 지나간 것인지, 이미 싸움이 붙은 것인지에 따라 조정이 할 일이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그래서 하나부터 다섯까지, 다섯 단계를 정해 둔 겁니다.

세다가 틀리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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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烽卒無知 只於一臺 隱見其炬

— 봉졸이 몰라서 한 자리에서만 불을 가렸다 보였다 한다

*단종실록 · 1454년 11월 8일*

今烽卒無知 只於一臺 隱見其炬

— 봉졸이 몰라서 한 자리에서만 불을 가렸다 보였다 한다

*단종실록 · 1454년 11월 8일*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봉수대 하나에는 불자리가 다섯 개 있어야 하는데, 어떤 곳에서는 한 자리에서 불을 가렸다 보였다 하며 개수를 맞췄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이 처음을 못 보고 끝만 보면 어떻게 될까요. 넷을 둘로 셀 수도 있습니다. 위험의 크기가 절반으로 줄어 전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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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올려라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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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二三炬 或四五炬 一時竝擧也

—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다섯이든 한꺼번에 올린다

*단종실록 · 1454년 11월 8일*

或二三炬 或四五炬 一時竝擧也

—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다섯이든 한꺼번에 올린다

*단종실록 · 1454년 11월 8일*

경상도 수군 지휘관이 방법을 올렸습니다. 세지 말고, 한꺼번에 올리자.

둘이면 둘을 동시에, 다섯이면 다섯을 동시에 피우면 멀리서 한눈에 보입니다. 세는 순간이 사라지니 틀릴 일도 없어집니다.

조정은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1454년의 일입니다.

가르치지 않았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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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久昇平 只充烽軍而已 不敎講文

— 오래 평화로워, 봉군 머릿수만 채우고 규정을 가르치지 않았다

*비변사등록 · 1729년 4월 14일*

年久昇平 只充烽軍而已 不敎講文

— 오래 평화로워, 봉군 머릿수만 채우고 규정을 가르치지 않았다

*비변사등록 · 1729년 4월 14일*

시간이 흐릅니다. 어느 무관이 임금 앞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가까운 봉수대가 평소처럼 불 하나만 올리고 아무 보고가 없기에, 이상해서 봉군을 불러 물었더니 전혀 모르더랍니다. 규정을 배운 적이 없었던 거죠.

그가 짚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오래 평화로웠다. 그래서 고을 수령이 사람 수만 채우고 규정은 가르치지 않았다.

불이 끊기면

守令決杖八十 色吏烽軍杖一百

— 수령은 곤장 여든 대, 봉군은 백 대

*숙종실록 · 1703년 5월 18일 · 대전통편 봉수조*

守令決杖八十 色吏烽軍杖一百

— 수령은 곤장 여든 대, 봉군은 백 대

*숙종실록 · 1703년 5월 18일 · 대전통편 봉수조*

불이 끊기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법에 정해져 있었습니다. 고을 수령은 곤장 여든 대. 감독한 사람과 봉군은 백 대에, 아주 먼 변방으로 보내 군역을 살게 했습니다.

돈으로 대신 내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무겁게 본 자리였다는 뜻입니다.

목을 벨 것인가

無事時不擧火者 直爲梟示 恐涉太過

— 무사할 때 불을 안 올렸다고 바로 목을 거는 것은 지나치다

*숙종실록 · 1703년 5월 18일*

無事時不擧火者 直爲梟示 恐涉太過

— 무사할 때 불을 안 올렸다고 바로 목을 거는 것은 지나치다

*숙종실록 · 1703년 5월 18일*

1703년, 함경도 단천에서 봉수대 군사가 자리를 비워 불이 끊겼습니다. 그 지역 병마절도사가 국경에 목을 걸어 본보기로 삼자고 청했습니다.

조정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사변이 있을 때 불이 끊긴 자에게도 곤장 백 대와 변방 군역이 최고형인데, 아무 일 없을 때 안 올렸다고 바로 목을 거는 것은 지나치다.

법을 세워 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벌의 크기까지 미리 정해 두어야 그때그때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예순다섯의 봉군

烽火軍李德明 年至六十五 猶未免役

— 봉화군 이덕명은 예순다섯인데 아직 역을 면하지 못했다

*세조실록 · 1456년 11월 14일*

烽火軍李德明 年至六十五 猶未免役

— 봉화군 이덕명은 예순다섯인데 아직 역을 면하지 못했다

*세조실록 · 1456년 11월 14일*

지키는 사람 쪽도 봅시다.

충청도 남포의 봉화군 이덕명은 예순다섯 살이었습니다. 그 나이에도 역을 면하지 못하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도망쳤습니다.

관찰사가 벌을 주자고 올리자 임금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순다섯이 되도록 놓아주지 않아 견디지 못하고 머리를 깎은 것인데, 그 죄를 묻는 것이 옳으냐.

신호를 지키는 일은 결국 사람이 산꼭대기에 서 있는 일이었습니다.

정해 두는 일

오늘의 사이렌은 스무 분 만에 끝났습니다.

조선의 봉수도 대부분의 날은 불 하나였습니다. 아무 일 없다는 뜻이죠. 중요한 것은 아무 일 없을 때도 그 하나를 올렸다는 점입니다.

신호를 미리 정해 두는 일, 그리고 아무 일 없는 날에도 그 신호를 지키는 일. 오백 년 전 기록이 남긴 것은 그 두 가지였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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