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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2026년 08월 29일·5분 분량·원자료 직접 집계

독일 베를린 5.79TB 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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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실록을 네 벌 만들어 네 곳에 나눴다

한눈에 — 가져간 것에는 계약서가 4만 6,000건 넘게 들어 있었습니다. 1466년, 대사헌 양성지가 글을 올렸습니다.

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불타는 궁에서 들고 나왔다정종실록 · 1400년 12월 22일
불이 무서워 옮겼다태종실록 · 1402년 6월 11일
네 벌을 만들어 네 곳에세종실록 · 1445년 11월 21일
하나는 무겁게, 하나는 가볍게세조실록 · 1466년 11월 17일
물과 불과 도둑선조실록 · 1597년 2월 12일

베를린이 통째로 털렸다

이번 달, 독일 베를린 주의 행정 전산망이 뚫렸습니다.

랜섬웨어 조직이 가져간 자료가 오 점 팔 테라바이트에 이릅니다. 그리고 비트코인 서른 개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돈을 안 주면 팔겠다며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시한을 정해 두고 남은 시간을 화면에 띄워 두는 방식이었습니다.

무엇이 나갔나

가져간 것에는 계약서가 4만 6,000건 넘게 들어 있었습니다. 전자우편과 전화번호, 비밀번호, 그리고 기밀로 분류된 문서까지 함께였습니다.

행정 기관이 다루는 자료는 시민이 고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주소를 옮기고 세금을 내고 허가를 받는 동안, 그 기록은 저절로 쌓입니다.

우리도 남 일이 아닙니다. 개인정보가 한꺼번에 새어 나갔다는 소식이 올해만 여러 번 있었습니다.

왜 한 번에 다 나가나

한 번에 다 나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한 곳에 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아 두면 쓰기 좋습니다. 찾기도 빠르고 관리도 편합니다. 그런데 잃을 때는 한꺼번에 잃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600년 전에도 붙들고 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타는 궁에서 들고 나왔다

入直史官盧異開庫, 手出史冊焉

— 숙직 사관 노이가 창고를 열고 손으로 사책을 꺼냈다

*정종실록 · 1400년 12월 22일*

入直史官盧異開庫, 手出史冊焉

— 숙직 사관 노이가 창고를 열고 손으로 사책을 꺼냈다

*정종실록 · 1400년 12월 22일*

1400년 겨울, 수창궁에 불이 났습니다. 자물쇠를 맡은 자가 낸 불이 침실에서 시작해 대전까지 번졌습니다.

정승들이 모두 달려와 불을 껐습니다. 임금은 「궁궐은 이미 탔으니 구할 것이 없다. 사람이나 다치게 하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때 사고가 그 궁 안에 있었습니다. 숙직하던 사관 노이가 창고를 열고, 손으로 사책을 꺼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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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무서워 옮겼다

又近司膳之廚, 火災可畏, 又移于尙衣院

— 또 부엌이 가까워 불이 무서워 다시 상의원으로 옮겼다

*태종실록 · 1402년 6월 11일*

又近司膳之廚, 火災可畏, 又移于尙衣院

— 또 부엌이 가까워 불이 무서워 다시 상의원으로 옮겼다

*태종실록 · 1402년 6월 11일*

두 해 뒤, 사고를 또 옮겼습니다.

궁이 탄 뒤 중추원으로 옮겼는데, 거기는 부엌이 가까웠습니다. 불이 무서워 다시 상의원으로 옮겼습니다.

두 해 만에 세 번째 자리였습니다.

네 벌을 만들어 네 곳에

各書四本, 一本藏于本館實錄閣, 三本分藏于忠州、全州、星州史庫

— 각각 네 벌을 써서 한 벌은 실록각에, 세 벌은 충주·전주·성주 사고에 나눠 두다

*세종실록 · 1445년 11월 21일*

各書四本, 一本藏于本館實錄閣, 三本分藏于忠州、全州、星州史庫

— 각각 네 벌을 써서 한 벌은 실록각에, 세 벌은 충주·전주·성주 사고에 나눠 두다

*세종실록 · 1445년 11월 21일*

1445년, 춘추관이 아뢰었습니다.

「태조실록 열다섯 권, 공정왕실록 여섯 권, 태종실록 서른여섯 권을 이제 각각 네 벌씩 베껴 썼습니다. 한 벌은 본관 실록각에 두고, 세 벌은 충주와 전주와 성주 사고에 나누어 보관하겠습니다.

그대로 하라 했습니다.

하나는 무겁게, 하나는 가볍게

一件重大, 以備小盜之偸; 一件輕便, 以備倉卒

— 한 벌은 무겁고 크게 좀도둑을 대비하고, 한 벌은 가볍게 급한 때를 대비한다

*세조실록 · 1466년 11월 17일*

一件重大, 以備小盜之偸; 一件輕便, 以備倉卒

— 한 벌은 무겁고 크게 좀도둑을 대비하고, 한 벌은 가볍게 급한 때를 대비한다

*세조실록 · 1466년 11월 17일*

1466년, 대사헌 양성지가 글을 올렸습니다.

책을 쇠붙이로 눌러 무겁게 꾸미는 관행을 두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는 도둑을 부를 뿐 아니라,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면 손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나누자고 했습니다. 「한 벌은 무겁고 크게 만들어 좀도둑을 대비하고, 한 벌은 가볍게 만들어 급한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물과 불과 도둑

一藏于金剛山, 一藏于妙香山, 以爲水、火、盜賊之備

— 하나는 금강산에, 하나는 묘향산에 두어 물과 불과 도둑에 대비한다

*선조실록 · 1597년 2월 12일*

一藏于金剛山, 一藏于妙香山, 以爲水、火、盜賊之備

— 하나는 금강산에, 하나는 묘향산에 두어 물과 불과 도둑에 대비한다

*선조실록 · 1597년 2월 12일*

1597년, 전쟁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사고 넷 가운데 셋이 이미 불탄 뒤였습니다.

신하가 아뢰었습니다. 「한 곳에 두었다가 뜻밖의 변이 있으면 어찌하겠습니까.

그래서 두 벌을 더 베껴 하나는 금강산에, 하나는 묘향산에 두자고 했습니다. 물과 불과 도둑에 대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눠 두는 값

조선이 실록을 지킨 방법은 대단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벌을 만들어 멀리 떼어 놓은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단순한 것을, 불이 난 다음에 배웠습니다. 궁이 타고 부엌 옆으로 옮겼다가 또 옮기면서요.

우리가 지금 배우는 자리도 같아 보입니다. 다만 조선은 그 뒤로 600년 치를 남겼고, 베를린은 한 번에 잃었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출처

정종실록 · 태종실록 · 세종실록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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