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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2026년 08월 29일·4분 분량·원자료 직접 집계

다자녀 기준 셋에서 둘로…조선은 노비가 낳아도 쌀 700kg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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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 주말과 공휴일에 10퍼센트, 미성년 자녀가 셋이면 20퍼센트입니다. 올해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가 14만 명을 넘었습니다.

근거가 된 기록

대목출전
나라가 아이를 세다세종실록 · 1431년 7월 5일
부르는 이름이 바뀐다승정원일기 · 1655년 8월 3일 · 1674년 12월 3일

셋에서 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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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녀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아이가 셋이어야 다자녀였습니다. 올해부터는 둘부터입니다.

주택 특별공급이 먼저 바뀌었습니다. 공공분양도 민간분양도, 세 자녀 이상이던 신청 자격이 두 자녀로 내려왔습니다. 공공임대는 두 자녀 가구의 배점이 올라갔고, 세금과 자동차 혜택도 둘부터 붙습니다.

기준선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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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부터는 고속도로 통행료도 깎아 줍니다. 주말과 공휴일에 10퍼센트, 미성년 자녀가 셋이면 20퍼센트입니다.

기준 하나를 낮추면 받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이 정책의 핵심은 액수가 아니라 그 기준선입니다.

왜 지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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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에는 숫자가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태어난 아이가 14만 명을 넘었습니다. 지난해보다 15.4% 늘었습니다. 늘어난 수도 비율도 통계를 만든 뒤로 가장 큽니다. 2년 내리 오르는 중이고, 합계출산율은 7년 만에 영 점 구 명대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몇 명부터 다자녀인가」는, 오래전에도 정해야 했던 문제였습니다.

나라가 아이를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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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産三男

— 한 번에 아들 셋을 낳다

*세종실록 · 1431년 7월 5일*

조선왕조실록에는 1404년부터 1693년까지, 세쌍둥이가 태어났다는 기사가 아흔 번이 넘게 나옵니다.

지방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감사가 장계를 올렸습니다. 그 종이가 도성까지 올라가 예조에서 의논되고, 임금이 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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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700킬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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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乳三男者, 贈米十石

— 한 번에 아들 셋을 낳은 자에게는 쌀 열 섬을 준다

*세종실록 · 1431년 7월 5일*

정해진 몫이 있었습니다. 쌀과 콩을 합쳐 7백 킬로그램에 가까웠으니, 한 집이 한 해를 먹고도 남을 양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다 살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규정은 법전에 없습니다. 오직 「전례대로」라는 말로만 굴러갔습니다.

둘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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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舊例, 不可賜

— 옛 전례가 없으니 줄 수 없습니다

*세종실록 · 1431년 7월 5일*

1431년, 초계군의 노비 약비가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둘이 죽었습니다.

승정원이 아뢰었습니다. 「둘이 죽고 하나만 살았다면, 줄 전례가 없습니다.」

세종이 말했습니다. 「이 여자가 두 아들을 잃었으나, 쌀을 주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신하 안숭선이 다시 아뢰었습니다. 「옛 전례가 없으니 줄 수 없습니다.」

예조가 답을 냈습니다. 「반으로 줄여 주소서.」

아이 둘을 잃은 노비에게, 나라가 그 절반을 보냈습니다.

성이 없는 이름들

받은 사람 가운데 넷에 하나 가까이가 노비였습니다.

승가, 고초, 단지, 돌비, 분이, 늣언. 기록에 남은 이름들입니다. 성이 없습니다.

딸 셋을 낳아도 줬습니다. 1646년 고성에서는 임금이 「넉넉히 쌀과 고기를 주라」고 했습니다.

부르는 이름이 바뀐다

依例賜米 → 事係變異事

— 전례대로 쌀을 주라 → 일이 변괴에 속함

*승정원일기 · 1655년 8월 3일 · 1674년 12월 3일*

그런데 승정원일기를 보면, 같은 일을 적는 말이 스무 해 만에 달라집니다.

1655년에는 이렇게 적혔습니다. 「전례대로 쌀을 주라.」

9년 뒤에는 「이상한 일에 속함」이 되었습니다. 다시 10년 뒤에는 「변괴에 속함」이라고 적혔습니다.

같은 무렵 실록에서는, 세쌍둥이가 태어났다는 기사가 전염병 사망자 수 옆에 나란히 실립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1693년을 끝으로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

무엇이 먼저 바뀌었나

조선이 왜 쌀을 보냈는지는 기록에 적혀 있습니다. 사람이 곧 나라의 힘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비의 아이도 셈에 넣었습니다.

그 셈이 흔들리자, 아이가 태어난 일이 갑자기 불길해진 것이 아닙니다. 줄 것이 없어지자 부르는 이름이 먼저 바뀐 것이라고 저는 읽습니다.

기준을 낮춘다는 것은 줄 사람을 늘린다는 뜻입니다. 조선의 기록에 기준을 낮춘 일은 없습니다.

기록한국사 였습니다.

출처

세종실록 · 명종실록 · 선조실록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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