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국민에게 묻는다…세종은 17만 명에게 묻고 14년을 기다렸다 (본편)
한눈에 — 2026년 8월 13일, 국가교육위원회가 수능을 서술형과 논술형으로 바꾸는 문제를 놓고 사람들에게 직접 묻기로 했습니다. 제22대 국회 회의록에서 「공론화」라는 말이 나온 회의만 706번입니다.
기록에 남은 말
| 대목 | 기록에 남은 말 |
|---|---|
| 시험 방식을 사람들에게 묻기로 했다 | 2026년 8월 13일 국가교육위원회 제8차 회의 · 수능 서·논술형 공론화 착수 |
| 그래서 정하지 않고 묻기로 했다 | 제22대 국회 「공론화」 706개 회의 · 「수능」 171개 회의 |
| 1430년, 나라가 온 백성에게 물었다 | 찬성 98,657명 · 반대 74,149명 · 합 172,806명 |
| 남쪽과 북쪽의 답이 정반대였다 | 전라 99.1% · 경상 98.9% · 경기 98.6% · 충청 33.3% · 평안 4.5% · 함길 1.0% |
| 벼슬에 있는 사람과 물러난 사람이 갈렸다 | 현직 관리 찬성 39.7% · 물러난 관리 찬성 79.1% |
| 이겼는데도 시행하지 않았다 | 1430년 조사 → 1444년 공법 확정 · 14년 |
| 세종이 본 것 | 반대가 몰린 곳은 땅이 메마른 도였다 |
출전: 세종실록 · 세종 12년 8월 10일
시험 방식을 사람들에게 묻기로 했다
2026년 8월 13일, 국가교육위원회가 수능을 서술형과 논술형으로 바꾸는 문제를 놓고 사람들에게 직접 묻기로 했습니다.
지금 수능은 다섯 개 중 하나를 고르는 방식입니다. 채점이 빠르고 시비가 붙지 않는 대신, 생각을 적어 내는 힘은 재지 못한다는 말이 오래 나왔습니다.
바꾸자는 쪽과 그대로 두자는 쪽이 팽팽합니다.
그래서 정하지 않고 묻기로 했다
시험 방식은 한 번 바꾸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바뀌는 순간 이득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이 갈립니다.
준비할 시간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이 다르고, 도시와 지방이 다릅니다. 그래서 요즘은 정하기 전에 묻습니다.
제22대 국회 회의록에서 「공론화」라는 말이 나온 회의만 706번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새것이 아닙니다.
1430년, 나라가 온 백성에게 물었다
可者, 凡九萬八千六百五十七人, 否者, 七萬四千一百四十九人
— 찬성 98,657명 · 반대 74,149명 · 합 172,806명
*세종실록 · 세종 12년 8월 10일*
1430년 8월, 호조가 보고를 올립니다. 세금 걷는 새 법을 시행할지 온 나라에 물었더니, 찬성이 9만 8천여 명, 반대가 7만 4천여 명이었다고.
답한 사람이 17만 명을 넘습니다. 관리만 물은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시골 백성까지 넣었습니다.
남쪽과 북쪽의 답이 정반대였다
전국을 합치면 57 대 43입니다. 그런데 도마다 갈라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전라도는 100명 중 99명이 찬성했습니다. 경상도와 경기도도 그랬습니다.
함길도는 100명 가운데 1명만 찬성했습니다. 평안도는 4명, 강원도는 12명이었습니다.
벼슬에 있는 사람과 물러난 사람이 갈렸다
三品以下時行二百五十九人、前銜四百四十三人等以爲可
— 현직 관리 찬성 39.7% · 물러난 관리 찬성 79.1%
*세종실록 · 세종 12년 8월 10일*
한 가지가 더 적혀 있습니다. 서울의 관리들은 지금 자리에 있는 사람과 물러난 사람을 나누어 적었습니다.
자리에 있는 사람은 열에 넷만 찬성했고, 물러난 사람은 열에 여덟이 찬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관리가 해마다 논밭에 나가 그해 농사를 살펴보고 세금을 정했습니다. 새로 만들 법은 그 일을 통째로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이겼는데도 시행하지 않았다
찬성이 2만 4천 명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세종은 곧바로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논밭을 여섯 등급으로 나누고, 그해 농사를 아홉 단계로 가르는 일을 먼저 했습니다. 법이 자리 잡은 것은 1444년, 열네 해가 지난 뒤였습니다.
세종이 본 것
이 숫자를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세종이 본 것은 이긴 쪽이 아니라, 진 쪽이 어디에 몰려 있는가였습니다.
반대가 몰린 곳은 흙이 나쁜 고장이었습니다. 정해진 액수로 걷으면 그쪽이 먼저 무너집니다.
물음은 답을 고르려던 것이 아니라, 어디가 다른지 알아내려던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숫자로 본 한국사였습니다.

